항목 ID | GC029008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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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申包翅 |
영어음역 | Sin Posi |
이칭/별칭 | 호촌(壺村)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북도 고령군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위은숙 |
조선 전기 고령 출신의 문신.
본관은 고령(高靈). 호는 호촌(壺村). 고령신씨(高靈申氏)의 시조로 알려진 검교군기감사(檢校軍器監事) 신성용(申成用)의 현손으로 할아버지는 신사경(申思敬)이고, 아버지는 예의판서 보문각제학(禮儀判書寶文閣提學)을 지낸 신덕린(申德隣)이다. 세조 대에 삼정승을 모두 지낸 신숙주(申叔舟)가 손자이다. 장인은 김충한(金冲漢)이다.
신포시(申包翅)는 1383년(우왕 9) 생원으로 태종 이방원과 함께 식년문과에 급제하였다. 1427년(세종 9) 전내자윤(前內資尹)이었고, 뒤이어 통정(通政)에 임명되었다가 판전농(判典農)을 제수 받고 곧 봉상(奉常)으로 임명되었다. 1428년(세종 10) 사간(司諫)으로서 직임을 수행하면서 공법 제정, 신분제, 행정 제도의 문제와 관리들의 비리 척결에 대한 주장을 펼치는 등 개국 초창기의 문물제도의 설행에 앞장섰다. 1430년(세종 12) 공조참의에 이르렀다.
아버지 신덕린처럼 글씨를 잘 썼는데, 그의 필적이 『해동필첩(海東筆帖)』에 남아 있다.
묘소는 전라남도 곡성군 오산면에 있다.
찬성(贊成)에 추증되었으며, 전라북도 남원시 송동면의 두곡서원(杜谷書院)에 장인 김충한과 함께 배향되었다. 신포시는 고려에 대한 절의를 지켰으면서도 조선 왕조의 정통성도 인정하여 세종 대 벼슬에 나왔기 때문에, 조선 후기 ‘고려 두문동 72현’에 선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