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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공제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900818
한자 申公濟
영어음역 Sin Gongje
이칭/별칭 인희(仁希),이계(伊溪),정민(貞敏)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상북도 고령군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김용만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
출신지 경상북도 고령군
성별
생년 1469년연표보기
몰년 1536년연표보기
본관 고령
대표관직 이조판서

[정의]

조선 전기 고령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고령(高靈). 자는 인희(仁希), 호는 이계(伊溪). 아버지는 여절교위(勵節校尉) 신홍(申洪)이다.

[활동사항]

신공제(申公濟)[1469~1536]는 1486년(성종 17) 진사시에 장원으로 급제하였고, 이어 1495년(연산군 1) 증광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부정자가 되었다. 예문관검열과 승문원주서를 거쳐 옥당(玉堂)[홍문관]에 들어갔다. 1506년(중종 1) 사간원헌납과 사간원장령을 지냈다. 1517년(중종 12) 홍문관부제학·호조참판·이조판서 등을 역임하였는데, 특히 이조판서로 있을 때는 과거시(科擧試)의 전형을 맡아 사사로운 마음이 조금도 없는 공정한 관리를 하였다. 1522년(중종 17) 정조사(正朝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다.

1528년(중종 23) 의정부좌참찬, 이해 겨울에 호조판서 겸 세자좌부빈객(戶曹判書兼世子左副賓客)을 거쳐, 1536년(중종 31)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지냈다. 신공제는 특히 순창의 수석을 사랑하여 정자를 짓고 스스로 이계주인(伊溪主人)이라 하였는데, ‘이계’라는 호가 여기에서 비롯되었다.

[저술 및 작품]

초서와 예서에 능하였고 촉체(蜀體)를 잘 썼다. 또한 『해동명적(海東名蹟)』이라는 동국 명인의 필적을 간행하였다. 글씨는 광주안참판침묘비(廣州安參判琛墓碑)와 남원윤판서효손묘비(南原尹判書孝孫墓碑)가 남아 있다.

[상훈과 추모]

1516년(중종 11) 창원부사로 있을 때 청근수령(淸謹守令)으로서 표창을 받았으며, 청백리로 피선되었다. 시호는 정민(貞敏)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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