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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900852
한자 忠臣
영어음역 Chungsin
분야 종교/유교,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경상북도 고령군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이병훈

[정의]

경상북도 고령 지역에서 전통 시대에 나라와 임금을 위하여 충을 실천한 신하.

[개설]

충신은 나라에 도움이 되는 성신(聖臣), 양신(良臣), 충신(忠臣), 지신(智臣), 정신(貞臣), 직신(直臣)의 육정(六正) 가운데 하나이다. 고령 지역에도 충과 관련된 인물과 유적이 상당수 남아 있어 전통시대 정치적·사회적 규범으로 자리 잡았던 충 사상의 영향을 알 수 있다. 『여지도서(輿地圖書)』와 『영남읍지(嶺南邑誌)』 등에 고령 지역 충신에 관한 기록이 보인다.

[고령 지역 충신들]

1. 김양(金瀁)[1550~1592]

본관은 고령(高靈), 자는 유원(裕源)이다. 무과에 등제하여 용야위부장을 지낸 김두문(金斗文)과 의인(宜人) 경주김씨 사이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재종형인 송암(松庵) 김면(金沔)의 진중에서 보익한 공이 많아 통정대부장예원판결사로 제수되었다. 기일은 8월 15일이다.

2. 김회(金澮)[1549~1595]

본관은 고령, 자는 지하(志河), 호는 송헌(松軒)이다. 김면의 동생이다. 학행이 저세(著世)하여 효렴(孝廉)으로 장사랑 순릉참봉(將仕郞順陵參奉)에 제수되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형 김면을 따라 의병으로 활동하였다. 김면이 순절한 후에도 계속 적과 싸우다 1595년 안의에 있는 황석산성에서 조종도, 곽준 등과 함께 순절하였다. 후에 선무원종공신의 예로 자헌대부 예조판서 동지의금부사로 추증되었다. 묘는 고령군 개진면 직동에 있다.

3. 박대복(朴大福)[1558~1594)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자성(子誠), 호는 운암(雲庵)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곽재우, 김면과 함께 창의하여 군량미 2,000여 석을 지원하고 왜적을 대파하였다. 1594년(선조 27) 37세의 나이로 전투 중에 순절했다. 후에 병조참의에 증직되었다.

4. 이득춘(李得春)

본관은 성산(星山)이다. 이언함(李彦涵)의 아들로,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김면, 곽준(郭遵), 문위(文緯), 박정번(朴廷璠) 등과 의병을 일으키고 공을 세워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에 올랐다. 난이 끝난 후에는 고령의 향안(鄕案)을 창건하여 풍속 교화에 힘썼다.

5. 이춘형(李春亨)[1541~1600]

본관은 성산, 자는 여상(汝常)이다. 임진왜란 때 형 이운(李雲), 아우 이수(李需)와 아들 이영숙(李永淑), 조카 이영해(李永海)·이영순(李永淳)·이영청(李永淸)·이영항(李永沆)·이영택(李永澤), 종질 이종인(李種仁) 등 일가 12명과 힘을 합쳐 의병을 일으키고 고령 지역을 방위하였다. 이후 각지에서 왜적과 전투를 벌여 벼슬이 통덕랑에 이르렀다.

6. 전극창(全克昌)

본관은 죽산(竹山), 자는 판언(判彦)이다. 1621년(광해군 13) 무과에 등제하여 훈련원봉사를 역임했고, 1637년(인조 15) 창솔의여북병사(唱率義旅北兵使) 재임 중에 안주전투에서 부윤 이만성(李萬成)과 함께 순절하였다. 호조판서에 증직되었으며, 시호는 충경공(忠敬公)이다. 고령군 운수면에 묘소가 있다.

7. 정언충(鄭彦忠)

본관은 동래(東萊)이다. 선조 때 무과에 등제하여 남원부사를 비롯하여 여섯 고을을 돌면서 선정을 베풀어 모든 고을에서 유애비(遺愛碑)를 세워 그 공적을 기렸다고 한다. 임진왜란을 당하자 바로 의병을 일으키고 공을 세워 원종공신이 되었다.

8. 정집(鄭潗)

본관은 동래이다. 삼로당(三老堂) 정우(鄭堣)의 손자이다. 영조 무신란 때 벼슬에서 물러나자 그 부당함을 상소하여 좋은 결과를 얻었다. 무신란 당시 야로에서 유명철(兪命哲)이 진을 치고 항거할 때 공을 세워 쌀과 옷을 하사받았다.

[관련 유적 현황]

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 고곡리에 조선시대 의병 활동으로 왜적과 맞서 싸워 큰 공을 세웠던 의병장 김면 장군의 신도비와 도암서원, 도암서당 등이 있다. 김면 장군 유적은 경상북도 기념물 제76호로 지정되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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