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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순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900953
한자 崔基淳
영어음역 Choe Gisun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북도 고령군 개진면 양전리지도보기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윤정원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독립운동가
출신지 경상남도 합천군 덕곡면
성별
생년 1893년연표보기
몰년 1927년연표보기
본관 강릉
대표경력 정의부 3구장

[정의]

일제강점기 고령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개설]

최기순(崔基淳)[1893~1927]은 본관이 강릉(江陵)으로, 경상남도 합천군 덕곡면에서 최능한(崔能翰)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으나, 15세쯤에 부모를 따라 고령군 개진면 양전리로 옮겨 살았다.

[활동사항]

최기순은 평양의 숭실학교(崇實學校)를 졸업하고, 1925년 33세에 만주로 갔다. 1920년 청산리전투 후 일본군의 간도 지방에서의 학살과 1921년 자유시사변 등으로 만주·연해주에서의 독립운동은 분산되고 침체되면서 독립운동 단체들의 통합이 절실히 요구되었다. 이때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를 중심으로 각 독립운동 단체가 통합 회의를 개최한 결과, 1924년 11월 만주에서 독립운동 연합체인 정의부(正義府)가 탄생하였다.

1926년 10월 정의부는 제3회 중앙의회를 개최하여 군민대표회에서 민정으로 복구하고 헌장을 개정하였다. 이때부터 정의부는 독립운동 단체의 현실적 여건을 고려하여 무력 행동을 삼가고 식산흥업(殖産興業)에 힘쓰는 활동을 폈다. 그리하여 재만 한인 2세를 대상으로 부내 한인 마을마다 소학교를 설립하였다.

최기순은 사평성(四平省) 개원(開源)에서 우국지사 자녀를 교육하는 한인 학교를 창립하였고, 이범석(李範奭) 장군과 같이 독립운동에 가담하여 활동하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정의부 3구장을 맡고 있던 최기순은 1927년 신의주로 이송되어 12월 7일 신의주형무소에 투옥되었다가, 그곳에서 향년 35세 나이로 순절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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