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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구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900981
한자 李俊九
영어음역 Yi Jungu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인물(일반)
지역 경상북도 고령군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정규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체육인|정구 선수
출신지 경상북도 고령군
성별

[정의]

일제강점기 고령 출신의 정구 선수.

[개설]

1930년대에 들어 고령 지역에는 정구의 붐이 크게 일어났다. 그 계기는 당시 일본 정구 대회를 10여 년간 석권해 오던 안동 출신의 조선 최고 선수인 권복인(權福仁)이 고령 영림창(營林廠)으로 부임해 온 것이었다. 권복임은 정구의 불모지나 다름없던 고령에서 선수를 발굴하여 지도한 결과, 당시 정구가 성행하던 거창·합천·성주·밀양·진주·마산·부산 등 인근 시·군과 교류전에서 매번 승리를 거두었다.

시합에서 이긴 선수들은 고향에 돌아와 당시 트럭 택시를 타고 시가행진을 벌였는데, 그럴 때면 군민들이 모두 나와 그들을 환영하였다. 한 번은 트럭 택시를 타고 시가행진을 하던 선수가 심하게 우승기를 흔들다가 깃대가 부러져 대나무를 붙여 보관하였다는 이야기가 당시 상황을 기억하는 사람들을 통해 전설처럼 전해 온다. 그러나 고령 지역의 정구의 붐은 권복임이 떠나고, 일제강점기 말기 전쟁이 치열해지면서 점차 시들어졌다.

[활동사항]

이준구(李俊九)유상호(兪尙浩), 백남주(白南柱), 김홍식(金洪植) 등의 뒤를 이은 고령공립보통학교 출신의 정구 선수로 중학교 1학년 때부터 두각을 나타내어 교내 대회는 물론, 각종 학생 대회에서 여러 차례 우승을 차지하였다. 그 후 대구 계성학교에 진학하여 정구 선수로서 명성을 떨쳤으며, 고령군 체육회를 설립하는 데 기여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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