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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901121
한자 製鐵
영어의미역 Iron Manufacture
분야 역사/전통 시대,정치·경제·사회/과학 기술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경상북도 고령군
시대 고대/삼국 시대/가야
집필자 이형기

[정의]

삼국시대 대가야에서 각종 철재를 만들던 기술.

[개설]

제철이란 야금의 한 분야로서, 철광석으로부터 철을 추출하고 정련해서 각종 사용목적에 적합하게 그 조성 및 조직을 필요한 형태로 만드는 기술을 말한다. 고대 우리나라의 여러 유적지에서 출토된 철기 유물들이 대부분 이기류와 무기류로 구성된 것은 우리 선조들이 일찍부터 철을 사용할 수 있는 지혜가 있었다는 것과, 인간의 생활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생활 도구에서부터 무기류에 이르기까지 그 문화적인 중요성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B.C. 3~4세기경 연(燕)의 주조 철기가 한반도 북부 지역에 처음 보급된 이후 곧 철 생산이 이루어진다. 이후 철기 문화는 빠른 속도로 남부 지역으로 확산되는데, 이는 주조 철부[鑄造鐵斧]와 쇠끌[鐵鑿]이 우리나라 곳곳에서 발견된 데서도 확인된다. 고령 지역에서는 낙동강 하류역을 중심으로 하는 지역에서 기원전 1세기 이후에 생산했던 철제 유물뿐만 아니라 4세기 이후에 생산되기 시작한 철제 유물이 다량으로 출토되고 있다.

[철기 생산지]

가야 지역에서 철은 국가의 형성 및 성장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는 『삼국지(三國志)』 변진조의 “나라에서는 철이 생산되는데 한(漢)·예(濊)·왜(倭)가 와서 가져갔으며, 시장에서의 매매에 철을 사용하여 마치 중국의 돈[錢]과 같이 사용되었다. 그리고 낙랑군과 대방군에 공급되었다.”는 기록을 통해 비교적 널리 철이 생산되고 사용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옛 가야 지역에서의 철기 생산 유적지로 고성 동외동 패총, 창원 성산 패총, 부산 동래 패총 등이 알려져 있다.

대가야에서 대규모로 철 생산이 이루어진 곳은 『삼국사기(三國史記)』에 보이는 적화현(赤火縣)[현재의 경상남도 합천군 야로면]으로 알려져 있다. 야로(冶爐)는 ‘대장장이’와 ‘화로’를 뜻하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철과 관련된 지역을 의미한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는 “이곳에서 많은 철이 생산되어 1년에 세공으로 정철 9,500근을 바쳤다.[沙鐵 産冶爐縣 南心妙里有鐵場 歲貢正鐵九千五百斤]”는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 세공이 그 정도면 실제 생산되는 양은 훨씬 더 많았을 터이다. 아울러 야철지가 확인되기도 하였는데, 합천군 야로면 야로 2리 및 가야면 성기리 야동마을 뒤편이 그것이다. 고령군 쌍림면 용리 일대에서도 야철지가 확인되었다.

[대가야 발전의 원동력이 된 제철 기술]

철기의 제작은 단단한 철제 농기구의 사용으로 좀 더 나은 농업 생산력을 이끌어 낼 수 있는 것과 동시에 무구류의 제작으로 말미암은 강력한 군사력의 확보를 가능하게 해 준다. 3세기 중엽 개발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야로의 철장은 김해 금관가야의 몰락 이후 선진 문물을 가진 유민과 이민들의 파급으로 한 단계 높은 철기·도기 등의 제작 기술, 사회 통제 방식, 국제 관계에 대한 인식 능력 등이 전해짐으로써 대가야의 성장에 한층 힘을 실어 주었을 것이다. 이러한 철기를 바탕으로 대가야는 서서히 외부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고, 결국 서부 경상남도 일대를 영향권 내에 둘 수 있었던 것이다. 무력이나 외부와의 교역을 중요 원동력으로 해석하면서도 그 근간을 야로의 철 생산에 둔 것은 그만큼 중요하다는 이야기가 될 것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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