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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901148
한자 西洛書堂
영어음역 Seorakseodang
영어의미역 Seorak Village School
분야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경상북도 고령군 다산면 상곡리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이수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서당
건립시기/일시 1892년연표보기
소재지 주소 경상북도 고령군 다산면 상곡1리 281-3[상곡4길 45]지도보기

[정의]

경상북도 고령군 다산면 상곡리에 있는 조선 후기 서당.

[위치]

고령군에서 성산면을 지나 국도 5호선을 따라 화원 방면으로 가다보면 달성중학교를 지나게 된다. 여기서 약 500m 더 가서 좌회전하여 구마고속도로 밑을 지나 성산동 새마을회관 방면으로 가면 낙동강 위로 나 있는 사문진교 다리를 건넌다. 여기서 계속 직진하면 다산면 상곡리 마을이 나오는데 사문진교에서 마을 가장 안쪽으로 들어가면 상곡리 마을회관이 나온다. 서락서당은 상곡리 마을회관의 두 번째 뒷집이다.

[변천]

서락서당은 1892년(고종 29) 만구(晩求) 이종기(李種杞)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그의 문인과 후손들이 건립한 서당이다. 처음에 이종기의 학문이 널리 알려지면서 문인과 제자들을 중심으로 유계(儒契)가 조직되었다. 또한 이종기의 강학을 들었던 제자들이 강학계(講學契)를 조직하였고 서락서당을 창건하기 위해 서락서당영건계(西洛書堂營建契)가 별도로 조직되었다.

영건계(營建契)를 통해 서락서당이 창건된 후 1902년 이종기가 죽기까지 이곳에서 강론을 펼쳤으며 수많은 문인과 제자를 배출하였다. 그 후 1907년 이종기의 저서 『만구선생문집』 17권이 김도화의 대표 편집 과정을 거쳐 서락서당에서 목판으로 발간되었고, 1936년 8권의 목판본이 간행되었다. 또한 서락서당에 제향되어 매년 3월 향사를 지냄으로써 이종기를 추모하였다.

1912년 기존 서락서당을 다시 이건 중창하기 위해 서락서당계(西洛書堂契)가 조직되었다. 그리고 1923년부터 고령군 다산면 상곡동 465번지에 본격적으로 서락서당을 짓기 시작하여 1926년에 완성되었다. 이때부터는 이종기의 제자였던 다곡(茶谷) 이기로(李基魯)의 주도하에 강학을 시작하여 이종기의 학통을 이었으나, 1946년 이기로가 죽자 강학 기능은 사라졌다.

그 후 1950년 6·25전쟁을 거치면서 서당이 소실되고 모든 문적이 불에 타 없어지자 1951년부터 후손과 문인, 제자들이 서당 재건에 들어갔으며 가장 먼저 서락서당계안을 복원하였다. 이 때 복원된 계안은 이진세(李晉世)의 기억에 대부분 의존하여 기록되었다.

그리고 현재 위치인 고령군 다산면 상곡리 281-3[상곡4길 45]에 서당 복원 작업이 이루어졌다. 여기에는 그의 후손과 문인을 비롯하여 16개 지역(고령, 성주, 대구달성, 칠곡, 김천, 영천, 청도, 창녕, 밀양, 의령, 합천, 초계, 창원, 칠원, 함안, 사천)에 있는 1,537명이 모금에 참여하였다고 한다.

[현황]

매년 음력 3월 초정 이종기와 이기로의 후학들이 서락서당에 모여 향사를 지내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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