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901230
한자 加耶琴
영어음역 Gayageum
이칭/별칭 가얏고,법금,풍류가야금,정악가야금
분야 문화·교육/문화·예술
유형 물품·도구/물품·도구
지역 경상북도 고령군
시대 고대/삼국 시대
집필자 문주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악기
재질 나무|명주실
용도 연주

[정의]

경상북도 고령 지역에서 고대 삼국시대부터 사용하고 있는 현악기.

[개설]

가야금은 오동나무로 된 긴 공명통(共鳴筒) 위에 열두 줄의 명주 줄을 매고 손가락으로 뜯어 소리를 내는 악기이다. 현재의 고령 지역에 위치한 고대 가야국의 가실왕이 중국의 쟁을 본떠 만든 현악기이다. 가야금은 특히 우륵이 즐겨 연주하던 악기였는데, 고령의 정정골우륵이 가야금을 타던 곳으로, 가야금의 소리가 정정 울려 퍼졌다고 해서 정정골이라 불렸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연원]

『삼국사기(三國史記)』 권32 악지(樂志)에는 가야금의 연원을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가야금은 중국 악부의 쟁을 본받아 만들었다. 『풍속통의(風俗通義)』에 ‘쟁은 진나라의 음악이다.’라고 하였고, 『석명(釋名)』에 ‘쟁은 줄을 높이 매어 소리가 쟁쟁하며, 병주·양주 두 주의 쟁은 모습이 슬과 같다.’고 하였다. 부현이 말하였다. ‘위가 둥근 것은 하늘을 상징하고 아래가 평평한 것은 땅을 상징하며, 가운데가 빈 것은 천지와 사방을 본받고 줄과 기둥은 열두 달에 비겼으니, 이는 곧 인과 지의 악기이다.’ 완우가 말하였다. ‘쟁은 길이가 여섯 자이니 음률의 수에 응한 것이다. 줄이 열두 개 있는 것은 사계절을 상징하고, 기둥의 높이가 세 치인 것은 하늘·땅·사람을 상징한다.’ 가야금은 비록 쟁과 제도가 조금 다르지만 대개 그와 비슷하였다.”

또한 『삼국사기』 권4의 신라본기(新羅本紀) 진흥왕(眞興王) 12·13년조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 “12년(551) 봄 정월에 연호를 개국으로 바꾸었다. 3월에 왕이 순행하다가 낭성에 이르러, 우륵과 그의 제자 이문이 음악을 잘한다는 말을 듣고 그들을 특별히 불렀다. 왕이 하림궁에 머무르며 음악을 연주하게 하니, 두 사람이 각각 새로운 노래를 지어 연주하였다. 이보다 앞서 가야국 가실왕이 12줄 현금을 만들었는데, 그것은 12달의 음률을 본뜬 것이다. 이에 우륵에게 명하여 곡을 만들에 하였던 바, 나라가 어지러워지자 우륵은 악기를 가지고 우리에게 귀의하였다. 그 악기의 이름은 가야금이다. 13년(552) 왕이 계고, 법지, 만덕 세 사람에게 명하여 우륵에게 음악을 배우도록 하였다. 우륵은 그들의 재능을 헤아려 계고에게는 가야금을, 법지에게는 노래를, 만덕에게는 춤을 가르쳤다. 학업이 끝나자 왕이 그들에게 연주하게 하고, 말하기를 ‘예전 낭성에서 들었던 음과 다름이 없다.’ 하고는 상을 후하게 주었다.”

장사훈은 『국악대사전』에서 “가야금은 한자말이고 가야고가 원래의 이름이다. 『삼국사기』에는 가야국의 가실왕이 만들었다고 하였고, 가야고라는 이름도 가야국의 나라 이름인 가야와 현악기의 옛말 ‘고’의 합성어로 되어 있기는 하나, 실제로는 신라 통일 이전에 가야고가 있었음은 1975년 경주 황성동에서 발굴된 토기 장경호의 목 부분에 새겨진 주악도에 의하여 증명된다.”라고 적고 있다.

[형태]

가야금의 종류에는 풍류 가야금[12현], 산조 가야금[12현], 개량 가야금[17현 가야금, 18현 가야금, 22현 가야금, 25현 가야금] 등이 있다. 『악학궤범(樂學軌範)』에는 가야금의 치수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적여 있다. “판의 길이 5자 5치, 넓이 1자, 담괘 길이 7치 3푼, 담괘 높이 7푼~5푼, 줄과 줄 사이 6푼, 양이두 길이 1자 2치 8푼, 뒤판 구멍길이 3자 9치 5푼, 뒤판 구멍 넓이 5자 9푼, 안족 큰 것의 높이 1치 5푼이고, 가로길이 2치, 작은 것 높이 1치 1푼이고, 가로 길이 1치 4푼이다.”

[변천]

가야의 가실왕이 만들고 고령 출신의 우륵이 즐겨 연주한 오동나무와 12줄의 명줄실로 만들어진 가야금은, 현대 음악에서 음량의 문제와 음정 조율의 문제점이 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하여 현대 음악에서 요구하는 방향으로 악기 개량이 진행되었다. 그 결과 12현에서 17현, 18현, 22현, 25현으로 줄의 수가 늘어났으며, 명주실에서 나일론실을 사용함으로써 음정을 조율하기 쉬운 음악적 효과와 음량도 확대되었다. 현의 수가 늘어남에 따라서 전통적인 연주 주법에도 변화가 발생하였다. 기존 연주법은 오른손은 음정을 왼손은 발성을 구현하였으나, 현재 개량 가야금 연주법은 양손주법을 사용하고 있다. 양손주법을 사용함에 따라서 서양 음악의 화성적인 기교까지도 가능하게 되었다.

[참고문헌]
이용자 의견
관** 디지털고령문화대전을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많은 이용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2013.05.13
민** 우리의 자랑, 우리의 역사, 우리의 보물을 사랑합니다. 2013.05.07
민** 가까운 정을 느끼는 우리의 문화를 사랑합니다 2013.05.07
정** 좋은 자료로서 공정성이 있습니다. 감사한 맘으로 더욱 증진하겠습니다. 2011.09.19
정** 우륵은 의령 부림 사람으로 의령 부림 합천 초계(팔계)경계인 미타산 하나 낙동강 적포(우륵리)강변에서 음악으로 초년을 보낸것이 확실시 되는 사료 입니다. 선현들의 얼을 받들어 문화 후인으로서 발전적 인생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2011.09.19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