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실향민들의 새 고향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9A010203
지역 경상북도 고령군 고령읍 연조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창언

[합천댐 수몰 지역에서 이주해 오다]

연조리를 비롯한 고령군 일대에는 합천댐 수몰 지역에서 새로운 삶의 터전을 이루기 위해 이주해 온 사람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다.

1989년 합천댐 공사가 시작되면서 합천군과 거창군에 걸친 5개 면 일부 지역이 수몰되어 수몰 지역에 거주했던 1714가구 7530명이 다른 지역으로 이주했다. 이 가운데 300여 가구는 수몰 지역에 인접한 이주 단지로 삶의 터전을 옮겼으며, 나머지 1400여 가구는 이주 단지가 아닌 다른 지역으로 새로운 터전을 찾아 이주했는데, 이 과정에서 고령읍[현 대가야읍] 일대에 70여 가구가 정착하게 되었다.

합천 지역은 대구와 진주의 중간 지점에 위치하고 있어서 합천 사람들이 대구로 향할 경우 고령을 거쳐 가야 한다. 수몰 지역 가운데 합천군 봉산면 일대는 고령과 거창을 잇는 도로에 인접하여 이전부터 봉산면에 살았던 사람들의 고령 지역 왕래가 잦은 편이었다. 고향을 떠나야 했던 수몰 지역 사람들 가운데 일부는 이처럼 낯설지 않은 고령을 새로운 터전으로 삼아 이주한 것이다.

[살기 좋은 곳이라 왔지]

합천댐이 조성되면서 고령 지역처럼 농촌에 기반한 소도시로 이주한 사람들은 이주 전의 삶의 방식과 큰 차이 없이 새로운 삶을 모색할 수 있었다.

얼마간의 농지를 구입해서 이전처럼 농사를 지으며 살 수도 있고, 소도시의 특성을 고려하여 작은 규모의 상점을 운영할 수도 있었다. 고령과 같은 소도시에 정착함으로써 진주나 대구와 같은 큰 도시 지역에 정착하는 데 따른 경제적·심리적 부담을 완화할 수 있었던 것이다.

고령 지역은 대도시의 소비 시장에 인접하여 수박, 딸기, 감자 등의 특용 작물 재배에 유리한 곳이다. 또한 농업이나 상업 이외의 일자리를 구하는 것이 다른 농촌 지역에 비해 수월하다. 수몰 이주민들이 고령 지역에 정착할 당시에는 이 지역에 요업(窯業)이 성행하여 새로운 터전을 찾은 이들에게 좋은 일자리가 되었다. 또한 1990년대부터는 다산지방산업단지, 개진지방산업단지, 쌍림농공단지, 개진농공단지, 장기공단 등의 공업 단지가 설립되면서 농촌 지역임에도 비교적 다양한 일자리를 구할 수 있었다. 원하지 않게 삶의 터전을 바꿔야 했던 수몰 이주민에게 고령 지역은 새로운 정착지로 좋은 여건을 갖춘 곳이었다.

[암만 캐도 고향만 하겠소]

1980년대 중반부터 수몰 지역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은 이제 20년이 넘게 고령에서 생활하고 있다.

1980년대 후반 경상남도 합천군 봉산면 고산리 덕동마을에서 고령으로 이주해 온 손정분[1934년생] 씨는 앞서 고령으로 이주한 조카의 권유로 이곳에 정착하였다. 당시 조카는 남들보다 일찍 수몰 지역에서 고령 지역으로 이주하여 특용 작물을 재배하였다.

손정분 씨 가족은 연조리에 살림집을 장만하고, 고아리 일대에 약간의 농지를 구입하여 농사를 지었다. 합천댐 수몰 지역 이주민들은 이 같은 방식으로 고령에서의 삶에 적응하였다. 주산 아래 위치한 연조리는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산바람이 불어 시원하기 때문에 고향을 떠난 이주민들에게 좋은 정착지가 되었다.

그러나 타향에서의 정착은 순조롭지만은 않았다. 손정분 씨는 고령에 이주해 온 초창기에 동네 사람들과 안면을 트기가 어려웠다고 말했다. 이런 이유로 타향살이를 하는 수몰 이주민들은 같은 고향 사람들끼리 계를 조직하거나 수몰된 고향 마을 인근의 사찰을 찾는 것으로 타향살이의 어려움을 달랬다.

손정분 씨의 남편은 6·25전쟁에 참전하여 두 개의 훈장을 받은 유공자이다. 전쟁 기간 입은 부상의 후유증으로 요즘에는 거동이 불편하다. 손정분 씨는 차도를 보이지 않는 남편의 건강에 시름이 깊어 갈수록 고향 생각이 더 난다고 했다. 이럴 때면 마을회관이나 마을회관의 길 건너편에 위치한 정자나무 아래 쉼터로 나가 마을의 노인들과 담소를 나누는 것으로 향수를 달래고 있단다.

[정보제공]

  • •  손정분(여, 1934년생, 고령읍 연조리 주민)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