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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우물[王井]가에 인물 났네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9A030204
지역 경상북도 고령군 고령읍 연조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박경용

[고령읍의 중심 마을답게 쟁쟁한 인물도 많아]

연조리 원로들은 대가야 왕궁 터를 감싸고 있는 뒷산 자락을 ‘봉두골(鳳頭골)’ 혹은 ‘봉두동’이라고 부른다. ‘봉의 머리’라는 봉두골이란 이름부터가 예사롭지 않은데, 이곳은 독립 운동가를 비롯해 고위 관료, 정치인, 군인, 실업가 등 쟁쟁한 인물들을 많이 배출한 곳이기도 하다. 항간에서는 대가야의 정기를 받은 곳인 만큼 풍수지리적으로 터가 좋아서 인물이 많이 배출된다는 말도 있다.

봉두골은 대가야읍의 중심 마을로 통한다. 그만큼 마을의 역사도 오래되었다. 연조리에 정착한 지 오래된 달성서씨기계유씨, 거창신씨 등도 모두 봉두골을 중심으로 세거했다.

봉두골에서 태어난 원로 서경규[1931년생] 씨에 의하면, 바로 옆마을인 ‘동배(東背)’는 대가야 왕궁을 ‘동쪽으로 등지고 있는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란다.

봉두골에는 오랜 옛날부터 죽은 사람을 묻지 않는다는 일종의 금기(禁忌)가 있다. 따라서 마을 사람들은 예전부터 암묵적으로 이곳에는 절대 묘를 쓰지 않았다. 1950년대 도정공장으로 많은 재산을 모은 고령읍[현 대가야읍]의 최 부자가 봉두골에 아버지의 산소를 조성하려 하자 마을 원로들이 집단으로 나서서 막은 일도 있단다. 아마도 봉두골을 대가야 왕궁과 인접한 신성한 상징 장소로 인식한 때문인 듯하다.

[‘이주사’로 불렸던 독지가 이봉조]

봉두골에는 일제 강점기 ‘이주사’, ‘정주사’로 불렸던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관리 출신으로 재부(財富)와 후세 교육에 힘써 주민 구휼과 나라의 동량을 길러낸 점이 회자된다. 이주사로 불리던 이봉조(李鳳朝) 씨는 무단 통치로 여행의 자유까지 박탈되었던 일제 강점기 지역민들이 돈을 벌기 위해 도일(渡日)할 때 신원 보증을 많이 서 주었다. 또 경신년[1920년] 대홍수로 많은 수재민이 가옥과 생업 기반을 잃고 길거리로 내몰리자, 사재를 털어 지금의 연조3리에 터를 닦아 집을 지어 살게 하고 경작 농토까지 제공했다. 이곳이 ‘새동네’로 일컬어진 것은 그때부터로, 지금도 연조3리는 이봉조 씨가 만든 동네로 인식되고 있다.

1930년대 후반 이봉조 씨가 죽어서 장례식을 거행하는데, 그를 추모하는 인파가 길을 메울 정도였다고 한다. 이후 고령군청과 장기동 등 세 곳에 그의 송덕비가 세워졌다. 그의 손자 이홍직 씨는 일본제국대학에 유학하여 광복 후 고령군 교육감과 군수 및 월성군수 등을 역임했다.

[‘정주사’의 세 아들과 독립 운동가 김상덕과 신철휴]

일제 강점기 고령군청 고위직 공무원을 역임하여 ‘정주사’로도 일컬어졌던 봉두골 정운한(鄭雲漢) 씨의 정씨 가문도 쟁쟁한 인재 배출로 유명하다. 그의 직손 중 정남택 씨는 국회의원을 지냈고, 정희택 씨는 일본제국대학 유학 후 검찰직 공무원으로 들어가 후에 감사원장을 역임했다. 정쌍택 씨는 막내로 대한석탄공사 사장을 역임했다.

봉두골 출신으로 일제 강점기 국내외에서 국권 회복을 위해 애썼던 독립 운동가도 많다. 상해임시정부 문화부장으로 김구 선생을 보좌했던 김상덕(金尙德) 씨는 광복 후 제헌의회 국회의원을 지냈는데, 6·25전쟁 중 납치되어 이북에서 사망했다.

독립투사 신철휴(申喆休) 씨는 중요한 거사를 위해 폭탄을 비밀리에 운반하던 중 불심 검문에 걸려 열차 속에서 일본 경찰에 붙들려 8년 옥고를 당했다. 그는 일제의 온갖 회유에도 응하지 않은 채 향리에서 꿋꿋이 살다, 광복 후에는 건국 운동에 참여하여 고령군 건국준비위원장을 역임했다.

김홍식 씨는 국회의원에 두 번이나 뽑혀서 중앙 정가에서도 실력을 발휘했던 인물이다. 서경규 씨는 통일주최국민회의 대의원 재선과 평통자문위원, 4~5대 경북도의원을 지냈다. 그는 고령토건을 설립하여 고령읍내를 흐르는 회천 모래로 고령에서 최초로 벽돌을 만들어 큰돈을 벌었다.

[3대 문중 출신의 지역 일꾼들]

봉두골에서 세거했던 대표 문중 집단에서도 지역 내외에 인물들을 배출했다. 달성서씨 가문에는 서정두[작고, 고령향교 전교], 서재덕[60, 서정두 자손, 현 고령농업협동조합장], 서동호[작고, 전 고령농업협동조합장], 서규원[건설업자, 전 고령군 소방대장], 서준규[82, 전 고령축산업협동조합장], 서동준[62, 고령읍장] 씨 등이 있다. 기계유씨 가문에는 유병훈[작고, 육군 소장], 유상호[작고, 민선 초대 도의원], 유강식[작고, 초대 고령면장], 유봉근[다산면장] 씨 등이 있다. 거창신씨 가문의 인물로는 교장을 지낸 신용수[작고] 씨를 들 수 있다.

[정보제공]

  • •  서경규(남, 1931년생, 전 도의원 및 고령토건 대표)
  • •  유병규(남, 1941년생, 현 고령새마을금고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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