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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의례 속의 양반 마을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9B020202
지역 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 합가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창언

[양반 마을의 텃세]

조선 시대 영남 사림파의 영수인 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1431~1492] 선생의 종택이 있는 개실마을은 고령 지역의 대표적인 반촌 가운데 한 곳이다.

신분의 구분이 뚜렷했던 조선 시대 반촌인 개실마을의 위세는 대단하였다. 신분의 구분이 사라진 현대 사회에서 반촌의 위세는 크게 약화되었지만 1970년대까지 개실마을에서는 신분제의 흔적이 일상의 영역에서 자주 표출되었다. 외지 사람이 개실마을을 출입하거나 지나칠 때는 이러한 텃세를 감안해야 했는데, 심지어 개실마을에서 일꾼으로 고용된 사람들도 외지 사람들에게 텃세를 부렸다고 한다.

1960년대와 1970년대 합가1리에 거주했던 학생들이 등교하려면 반드시 개실마을을 통과해야 했다. 그런데 개실마을을 지나가는 아이들에게 마을의 일꾼들이 늘 윽박지르며 행세(行勢)를 했는데, 이러한 윽박지르기와 행세는 학기말 통지표를 받을 무렵에 더욱 심했다고 한다. 잎담배를 말아 피울 종이가 부족했던 일꾼들이 아이들의 통지표를 빼앗았던 것이다. 통지표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아이들은 개실마을 앞을 가로 지르는 국도 대신 개천 건너 옛길을 이용했다. 그러나 국도가 변경되면서 옛길이 경작지로 변경되어 밭주인의 눈치를 살피면서 건너 다녀야 했다.

한 번은 까치둥지의 새끼까치를 잡으려고 합가1리 아이들이 개실마을 부근 큰 미루나무에 오른 적이 있다. 아이들이 둥지를 파헤치자 겨우 날 수 있을 정도였던 새끼까치는 둥지를 떠나 날아올랐다. 그러나 새끼까치는 멀리 가지 못하고 인근의 논으로 떨어졌고, 아이들은 논에 들어가 까치를 잡았다. 마침 모내기철이라 까치를 쫓아서 논이 들어간 아이들 때문에 모를 심은 논의 일부가 엉망이 되었다. 그날 저녁 무렵 아이들이 망쳐 놓은 개실마을 논 주인이 합가1리에 와서 아이들 버릇을 고친다고 큰 소동을 벌였다. 이상은 반촌인 개실마을의 위세와 텃세를 짐작하게 하는 좋은 사례이다.

[새색시 길들이기]

양반 마을인 개실마을에 새색시가 시집오면 입참례와 같은 신고식을 치러야 했단다. 신행 온 새색시는 시집 식구에 대한 폐백을 통해 첫 의례를 치른다. 새색시는 시가 사당에서 예를 치르고 집안 대소가를 방문하면서 인사를 올리는 과정을 거친 다음에도 비슷한 연령의 시집 식구들로부터 호된 신고식을 치러야 했다. 주로 시동생이나 시누이 그리고 신랑의 사촌부터 같은 항렬의 시댁 집안사람들에게 치르는 입참례를 개실마을 사람들은 ‘우시기’라고 한다.

개실마을의 우시기는 주로 정초나 추석과 같은 명절을 전후해 행해졌다. 명절 가운데서도 정월 대보름 이후 2월 초하루 이전까지인 휴식 기간 동안에 행해졌던 것이다. 명절이 되어야 남녀가 함께 어울릴 수 있었고, 이웃의 친척집 방문도 비교적 자유롭게 이루어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명절을 지내고 며칠 후 새색시가 있는 집으로 시누이와 시동생들이 모이는 것으로 ‘우시기’는 시작된다. 이들에게 새색시가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점을 이용하여 갖가지 음식을 요구하고 심부름을 시킨다. 이 과정에서 새색시의 친정집에 관한 험담을 늘어놓는다. 예컨대 새색시의 친정 집안사람들을 예의범절도 모르는 허드레 양반이라 하거나, 새색시가 천한 집안 출신이라 양반집 규수로서 자질을 갖추지 못했다는 식으로 새색시를 놀린다. 놀림을 당한 새색시는 말도 못하고 쩔쩔매다가 혼자 방으로 물러나 울음을 터트리는 것이다.

과거를 회상하는 개실마을 며느리들은 이 마을의 ‘우시기’가 특히 심했다고 한다. 그만큼 양반 마을로서 개실마을의 위세가 컸음을 반영하고 있다. 그런데 새색시 놀리기인 ‘우시기’는 시집온 새색시의 기를 누르고 시집의 위세를 높이기 위함이 아니라 오히려 새색시의 사람됨을 살펴보고 개실마을의 한 식구로 받아들이기 위한 과정으로서 의미를 가졌다고 한다.

[정보제공]

  • •  이추자(여, 1941년생, 쌍림면 합가리 주민, 개실마을 영농조합법인 이사)
  • •  이용호(남, 1953년생, 쌍림면 합가리 주민, 문화유산해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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