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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9B030102
지역 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 합가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박경용

[열여섯 나이에 두 번의 유월장을 치러 내고]

개실마을 토박이 김병식[1933년생] 씨는 점필재 김종직 선생의 17대 종손이다. 김병식 씨는 15세 때 결혼과 동시에 종가의 살림살이를 맡았다. 대구에서 중학 과정을 이수하던 15세에 아버지가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이듬해에는 다시 할아버지마저 별세함으로써 어린 나이에 2년에 걸쳐 두 번의 유월장(踰月葬)을 치러 내었다.

사랑채와 안채 사이의 중사랑채를 가리키며, “저기에 빈소가 두 개나 있었어요. 내가 독신[독자]이제. 내가 살아나온 거는 말도 못해요. 전기가 있었나? 전화가 있었나? 그래도 열여섯 살 묵은 기 다 치러 냈어요.” 하는 김병식 씨의 말 속에는 종손이란 역할의 어려움이 묻어 있었다.

김병식 씨는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장례를 치른 후 서울에서 못 다 한 공부를 하려 했지만, 6·25전쟁으로 그것도 여의치 못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 역시 종손의 역할을 충실히 다하라는 명령인 듯해서 공부와 군복무 외에는 줄곧 고향을 지켜 왔는데, 때로는 지역 사회에 봉사할 기회도 있어 면의원과 경상북도 교육위원을 역임하기도 했다고.

[접빈객, 봉제사는 종손의 기본 역할]

접빈객(接賓客) 봉제사(奉祭祀)는 종손의 기본적이면서도 가장 중요한 역할이다. 김병식 씨는 이를 특히 중시하여 ‘가훈’으로 여길 정도로 최선을 다해 왔다. 본인이 집에 없을 때도 손님이 오면 찬물 한 그릇을 대접하더라도 절대 맨입으로는 보내지 말라고 부인에게 당부하곤 했다.

연중 여러 부류의 많은 사람들이 종가를 방문한다. 특히 명절 때면 시중드는 사람이 앉아 쉴 틈이 없을 정도인데, 하루에 최대 60회의 술상을 내온 적도 있단다. 종손의 역할 뒤에는 항시 종부의 뒷받침이 있어야 하므로, 이를 잘 아는 그는 “6남매 낳아 기르면서 종부가 큰 고생을 했다.”고 말한다.

종가에는 특히 기제(忌祭), 묘사(墓祀), 차사(茶祀) 등 봉제사가 많다. 김병식 씨도 불천위(不遷位) 3회와 4대 봉사 기제 8회를 포함하여 차사 5회, 묘사 2회 등 거의 매달 제사를 지내왔다. 설, 한식, 단오, 추석, 동지 등 연중 5회를 지내던 차사는 이젠 설과 추석 2회로 줄였다. “제사는 순전히 자손들의 정성이지요. 한 번 제사에 입제, 정제, 파제 3일이나 정신을 쓰지요.”라는 말처럼, 제수 마련부터 마지막 일족들과의 음복까지 모든 과정에 종손의 마음 씀이 깃든다.

[때로는 마을에서 검사, 판사 역할도 맡아]

대대로 선산김씨[일선김씨] 종가의 살림은 결코 넉넉지 않았다. 입향조들은 무오사화(戊午士禍)로 인해 피해 다니느라 힘들었고, 김병식 씨의 고조할아버지는 28세에 대과에 급제하자마자 이듬해 별세했다. 증조할아버지 또한 한일합방으로 만주로 망명했다. “종가 살림이 넉넉할 수가 없지요. 어떤 때는 명절 차사(茶祀) 때 과일 몇 개 사 와서 깎아 가지고 사당에 썰어서 나누어 차리는 것을 보기도 했어요.”

종손의 역할은 봉제사 접빈객에서 끝나지 않는다. “마을 내 검사·판사 역할도 했어요. 부부끼리 싸우고 찾아와서 해결을 요청하면요.”라는 김병식 씨의 말처럼, 종손은 접빈객과 봉제사의 역할 외에도 때로는 마을 종중 구성원의 자잘한 갈등도 해결해야 한다. 지손(支孫)들은 이러한 종손을 선망의 대상으로 여기지만, 종손은 한 발자국 내디디거나 말 한 마디 할 때도 많은 조심이 된다.

[종가 전통을 잇는다는 큰 자부심]

종손의 역할이 이처럼 조심스럽고 어렵기는 하지만, 종가 전통을 잇는다는 자부심은 크다. “영남 일대 유림 모임 가면 내 자리가 있어요. 아무리 나보다 나이 많은 분들이라도 자리를 양보해 줘요.”라는 말처럼, 김병식 씨는 사회적으로도 점필재 선생의 종손으로서의 존재 가치를 인정받아 가슴 뿌듯하다. ‘문충세가(文忠世家)’라고 새겨진 종택 현판 앞에 선 그의 모습이 당당해 보이는 건 당연한 일일 게다.

김병식 씨는 종가 전통의 계승에도 남다른 관심을 지녀서, 방학을 이용해 외지 종친 자녀들을 모아 놓고 선조들의 업적과 정신을 가르치기도 했다. 최근에는 퇴계와 서애, 보백당, 허백당 등 경상북도 지역 종손들의 모임인 영지회(永志會)를 결성하여 종손으로서의 역할 수행에 대한 문제들을 함께 고민하고 있다. 동시에 그가 열여섯 명의 차종손 모임을 만들어 준 것도 종가 전통을 원활히 이어 나가도록 하기 위함이다. 김병식 씨가 있는 한 점필재 종가의 전통은 영원할 것이다.

[정보제공]

  • •  김병식(남, 1933년생, 쌍림면 합가리 주민, 선산김씨[일선김씨] 문충공파 17대 종손)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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