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9C030105
지역 경상북도 고령군 우곡면 도진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박경용

도진리고령박씨 소윤공파(少尹公波) 집성촌으로서 650년 동안 충효 정신을 부단히 실천해 온 전통의 고장이다. 그래서인지 현재 68세의 나이 차이를 지닌 7세대 종중 성원들이 한 마을에서 오순도순 살고 있다. 모든 게 변한 현대 사회이지만, 지금도 선조들이 남긴 충효 정신은 후손들의 삶 속에서 가정과 마을, 고을을 넘어 국가에까지 이어지고 있다. 고령군의회 의원을 역임한 박해동[1954년생] 씨와 이명희[1956년생] 씨 부부는 도진마을의 충효 전통을 일상 속에서 이어 나가는 좋은 본보기이다.

[큰아들로서의 도리를 다하기 위해]

박해동 씨는 도진리에서 8남매 중의 큰아들로 태어났다. 도진국민학교를 마친 후 대구로 유학하여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이후 그는 체신 공무원으로 일하면서 주경야독하며 행정학으로 학사와 석사 학위까지 받았다.

1982년 박해동 씨는 아버지가 간암으로 56세라는 젊은 나이에 별세하자, 큰아들로서의 도리를 다하기 위해 28세 때 귀향을 했다. 박해동 씨는 아버지가 작고한 후 2년 동안 귀향과 도시 정착을 두고 상당히 고민했다고 한다. 위로 세 명의 누나가 있었지만, 어머니를 봉양하고 농사 관리와 조상 제사, 동생들의 공부 뒷바라지 등이 모두 큰아들인 자신의 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직장 생활을 계속하는 게 도리가 아니었다.”는 박해동 씨의 말은 큰아들로서의 의무감이 얼마나 큰가를 보여 준다.

오래 전부터 도진리 야정들에서는 수박 농사가 성했다. 박해동 씨도 고향에 정착한 지 2년 후부터는 수박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살아생전 투병 생활을 하느라 가산이 탕진된 상태에서 돈을 벌어야 기울어진 가세도 일으키고 또 남동생 세 명의 교육도 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바로 밑의 동생을 제외한 두 명은 대학까지 시켰다. 그 중 한 명은 서울대학교를 졸업하고 박사 학위까지 취득했다.

[고령군의회 의원으로 ‘충(忠)’을 실천하다]

박해동 씨는 열심히 일한 끝에 이제는 17동의 수박 특작과 35마지기의 논농사를 짓는 부농이 되었다. 1998년부터 4년 동안은 고령군의회 제3대 의원으로 지역 사회에 봉사도 할 수 있었다. 지금은 유급제지만, 당시만 해도 군의원은 무보수 명예 봉사직이었다. 박해동 씨는 의원으로 군정(郡政)에 봉사하는 것도 도진리 선조들이 보여 주었던 나라에 대한 ‘충(忠)’의 작은 실천으로 생각했다. 이런 심정으로 그는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정치 철학으로 4년간 사심 없이 군정을 살폈다.

군의원 생활 중 박해동 씨가 추진했던 가장 기억에 남는 일들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다. 하나는 지역 발전을 위한 대안으로 고령군의 대구 편입을 추진했던 일인데, 여러 가지 이유로 관철되지는 못했다. 두 번째는 야정들을 비롯한 수박 특작 농사 지역의 원활한 물 공급을 위한 필수 시설인 관정(管井) 보급 사업이었다. 그는 실사구시의 획기적인 정책 대안을 제시하여 연간 군내 1개로 제한되던 관정을 동일 예산으로 특작 지역 각 면당 4~5개씩이나 보급이 기능하도록 만들었다. 마지막으로는 국가 혈세를 낭비하고 농민 부담을 증가시키는 비합리적인 농정을 타파한 노력이다.

이러한 박해동 씨의 열정과 능력을 인정하여 주위 사람들은 “도의원뿐만 아니라 군정까지도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인데…….”라면서, 지역의 정치 역학적 특수성으로 인해 재선에 실패한 점을 아쉬워한다.

[병상의 노모와 한 방에서 잠을 자며]

박해동 씨는 지역 정치인으로서 항시 지역 사회 발전을 위해 노력하지만, 가정적으로는 부모에게 효성이 지극한 자식이기도 하다. 7년간이나 간암을 앓던 아버지가 사경을 헤매던 당시에는 다니던 직장을 3주일씩이나 휴가를 연장해 가며 곁을 지켰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는 귀항하여 홀로된 어머니를 지극 정성으로 봉양했다. 83세까지 건강하게 생활하던 어머니가 대장암이 발병하여 돌아가실 때까지 부인[이명희 씨]과 함께 13개월 동안을 같은 방에서 잠을 자며 간병했다. 꿩고기를 비롯하여 마지막으로 찾은 음식들도 조달했다. “병 구환 하는 동안 평생의 살아온 이야기를 들었다.”는 그의 얼굴에 돌아가신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심정이 절절하게 배어 있었다.

[정보제공]

  • •  박해동(남, 1954년생, 우곡면 도진리 주민, 전 고령군의회 의원)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