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90037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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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東學農民運動 |
영어의미역 | Donghak Peasant Movement |
이칭/별칭 | 갑오농민전쟁,동학운동,동학농민혁명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경상북도 고령군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권대웅 |
[정의]
1894년 고령 지역에서 전개된 동학농민운동.
[개설]
동학농민운동은 1894년(고종 31) 전라도 고부의 접주 전봉준(全琫準) 등을 지도자로 동학교도와 농민들이 합세하여 교조신원(敎祖伸寃)과 외세 배척을 목적으로 전개한 농민 운동이다.
[역사적 배경]
1860년 경주에서 시작한 경상도의 동학은 경상북도 북부 지역을 중심으로 전파되었는데, 1874년 흥선대원군이 실각하고 민씨 정권이 들어서면서 삼남 지방으로 교세를 확장하였고 교문(敎門)의 조직망도 강화되었다. 1894년 봄부터 호남과 호서 지역 동학도의 움직임이 격화되면서 경상도 서북부 지역과 북부 지역에서도 위기감이 감돌았다.
1894년 4월 중순 전봉준이 이끄는 동학농민군이 진주를 함락한 뒤, 경상도의 김산·지례·거창 세 곳에서 동학당 혐의로 20여 명이 대구로 압송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선산과 상주는 동학당의 소굴로 알려졌고, 김산 지역은 3월 이후 동학도가 각처에서 활동하고 있었다.
1894년 여름에 접어들면서 경상도 지역에서 동학도의 활동은 한층 활발해졌다. 북서부 지역의 안동·의성·예천·봉화·용궁·문경·함창·상주·개령·지례·성주·김산과 남서부 지역의 함양·하동·곤양·사천·고성·단성·진주·남해 등지는 호남과 호서 농민군의 지원을 받으며 활발한 활동을 전개해 나갔다.
[경과]
고령 지역의 경우에는 동학농민군의 활동이나 농민군의 진출에 대비하여 움직이고 있는 양반 유생의 활동은 찾아 볼 수 없다. 1894년 6월 안의현감 조원식이 민보군(民保軍)을 결성하여 남원에서 들어오는 동학농민군을 섬멸한 뒤 안의·거창·함양 등지에는 동학농민군이 들어올 수 없었고, 1894년 8월 이후 지례·선산·성주를 점령한 동학군이 보수 유림의 반격으로 퇴각하였다.
[결과]
고령 지역은 주변 지역인 안의·거창·함양과 지례·선산·성주 등지로 진출하여 활동하다가 퇴각한 동학농민군의 침범에 비교적 안전한 곳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