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9007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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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星州呂氏 |
영어의미역 | Seongju Yeo Clan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경상북도 고령군 |
집필자 | 위은숙 |
[정의]
여어매(呂御梅)를 시조로 하는 경상북도 고령군 세거성씨.
[연원]
성주여씨(星州呂氏)는 여어매를 시조로 한다. 여어매는 달리 여어(呂御)라고도 하는데, 중국 내주(萊州) 사람으로 황소의 난을 피해 877년(헌강왕 3) 신라에 들어왔다. 935년 신라가 멸망한 뒤 고려에서 공조전서(工曹典書)를 지냈고 성주군 벽진면에 정착한 뒤 후손들이 대를 이어 살았다. 그 뒤 성산여씨와 함양여씨로 분관되었다가 중간에 병란으로 관련 문헌이 소실되어 계보를 명확히 알 수 없자 후손들이 고려 말 삼중대광(三重大匡)에 오른 여양유(呂良裕)를 중시조로 하고 세거지인 성산을 본관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 오고 있다.
성주여씨의 대표적 인물로는 여양유의 아들로 고려시대 판도판서(版圖判書)를 지낸 여위현(呂渭賢), 조선시대 공조판서를 지내고 문장으로 이름을 떨친 여극회(呂克誨), 여극회의 5세손으로 사복시정(司僕寺正)을 지내고 성주여씨를 중흥시킨 여문승(呂文承)이 있다. 그 밖에 중종 때 유생으로 왕자사부(王子師傅)를 지낸 여희림(呂希臨)은 현량과에 합격하였으나 벼슬길에 나가지 않고 고향에서 성리학 연구와 후진 양성에 전념하였고, 조선 말기 여주목(呂株穆)은 의병장으로 이름을 떨쳤다. 독립운동가 여준(呂準)은 이동녕(李東寧), 이상설(李相卨)과 함께 서전의숙을 설립하여 후진 양성에 힘썼다.
[현황]
2000년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전국에 살고 있는 성주여씨는 총 3,395가구에 11,012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