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9009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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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善鳴 |
영어음역 | Gim Seonmyeong |
이칭/별칭 | 세옥(世玉),문원(聞遠),모헌(慕軒),연한당(燕閒堂) |
분야 | 종교/유교,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효자·열녀 |
지역 | 경상북도 고령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병훈 |
성격 | 효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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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 합가리 |
성별 | 남 |
생년 | 1691년 |
몰년 | 1769년 |
본관 | 선산 |
[정의]
조선 후기 고령 출신의 효자.
[가계]
본관은 선산[一善]. 초명은 세옥(世玉), 자는 문원(聞遠), 호는 모헌(慕軒)·연한당(燕閒堂). 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이 8대조이며, 김종직의 넷째 아들인 김숭연(金嵩年)[1486~1539]이 7대조이다. 김숭연은 일직손씨(一直孫氏) 사이에 세 명의 아들을 두었는데, 장자인 김윤(金綸)이 일찍 졸하여 6대조인 김유(金維)[1515~1562]가 가계를 이었다.
김유는 밀양에서 태어났으며 양천최씨(陽川崔氏)와 혼인하여 2남 1녀를 두었다. 장자인 김몽령(金夢齡)[1551~1580]은 5대조로 호조정랑을 지냈으며, 남평문씨(南平文氏) 사이에서 3남을 두었다. 김선명(金善鳴)의 고조할아버지이자 김몽령의 장남인 김성율(金聲律)[1566~?]은 모포만호(毛浦萬戶)를 지냈으며, 고령박씨(高靈朴氏) 사이에 1남 3녀를 두었다. 고령박씨는 첨지(僉知) 박언임(朴彦任)의 딸이자, 포산(苞山) 곽진(郭趂)의 외손이다. 세 명의 가계는 남귀여가혼(男歸女家婚)이 주류를 이루는 조선 전기의 관행에 따라 김성율 대부터 고령의 가곡(佳谷)에 정착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증조할아버지인 김수휘(金受徽)[1599~1662]는 전력부위 용양위부사용(展力副尉龍驤衛副司勇)을 지냈으며, 밀양박씨와 광산노씨(光山盧氏) 사이에 후손이 없었다. 그래서 재종형제(再從兄弟)인 김효계(金孝繼)의 차남인 김이(金彛)[1636~1672]를 양자로 들였다. 할아버지 김이는 창녕성씨와 혼인하여 5남 1녀를 두었는데, 아버지는 셋째 아들인 김시사(金是泗)[1664~1705]이고 어머니는 안동권씨이다. 3남 2녀가 있다.
[활동사항]
김선명[1691~1769]은 부친상을 당하자 산소와 집을 오가며 산소와 모친을 극진히 보살폈다. 이후 ‘모헌(慕軒)’이라는 편액을 걸고 머물면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의를 따르며 살았다.
[학문과 사상]
위로는 고례(古禮)를 익히고, 아래로는 정주(程朱)의 예설(禮說)에 이르기까지 깊이 탐구하였다.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이 사방에서 찾아와 예에 대하여 질문을 하였으며, 『가례(家禮)』에서 의문시되는 것을 모아 한 권의 책으로 저술하였으나, 현존하지 않는다.
[묘소]
묘소는 고령군 쌍림면 신곡2리 박곡에 있으며, 간옹(艮翁) 이헌경(李獻慶)[1719~1791]이 묘갈명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