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9009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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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鄭泰熙 |
영어음역 | Jeong Taehui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북도 고령군 덕곡면 반성리 96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윤정원 |
성격 | 독립운동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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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경상북도 고령군 덕곡면 반성리 96 |
성별 | 남 |
생년 | 1923년 |
몰년 | 1969년 |
대표경력 | 광복군 제2지대 대원 |
[정의]
일제강점기 고령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정태희(鄭泰熙)[1923~1969]는 지금의 고령군 덕곡면 반성리에서 태어났다.
[활동사항]
정태희는 1941년 4월 중국 산시성[山西省] 태곡(太谷)에서 광복군(光復軍) 화북지구(華北地區) 지하공작책인 김천성(金天成)과 만난 뒤 광복군에 입대하였다. 일본군 경비대의 통역 출신인 점을 활용하여 적이 활동하는 중국 베이징[北京] 근처의 노안(路安)으로 들어가 이서룡(李瑞龍), 차영철(車永澈) 및 정영순(鄭英淳), 정윤희(鄭允熙) 형제와 함께 활동하였다.
1945년 봄 광복군 총사령부의 ‘한국광복군 건군 및 작전 계획’에 따라 군 전체의 작전이 종래 중국 관내 일본군의 전선 후방에 제한되었던 활동에서 만주와 태평양 지역까지 확대됨에 따라 전방 공작을 전개하고 있던 각 지대도 활발하게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정태희가 소속된 광복군 제2지대의 활동 지역 역시 중국 관내에서 벗어나 점차 만주와 중국 본토 방면으로까지 확대되었다. 그리하여 제2지대 소속의 문응국(文應國)·최봉진(崔俸鎭)·나동규(羅東奎)·송철(宋哲)·김성호(金成浩)·박영진(朴永晋)·김상준(金尙俊) 등이 인도·버마[현 미얀마] 전선으로 나가서 혁혁한 전공을 세우기도 하였다.
정태희는 김천성, 이서룡과 함께 산시성 지구를 공작 거점으로 하고 화베이[華北] 일대를 무대로 수많은 동포 청년들을 모집하여 본대에 입대시켰다. 또 중국군 유격대와도 긴밀한 연락을 취하면서 일본군이 이용하는 철도 및 군사 시설을 파괴하고 적군 부대를 습격하여 적지 않은 타격을 주는 등 많은 전공을 세웠다.
그러던 중 1943년 3월 중국인의 밀고로 김천성, 이서룡과 함께 태원헌병대(太原憲兵隊)에 붙잡혔다. 1944년 12월 12일 산시성에 주둔하고 있던 일본군 을(乙) 제3051부대 임시군법회의에서 항적방조(抗敵幇助) 혐의로 징역 5년형을 선고받고, 서대문형무소로 이감되어 옥고를 치르다가 해방을 맞이하여 출옥하였다.
[상훈과 추모]
1992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