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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기술자 출신의 장수 노인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9C030202
지역 경상북도 고령군 우곡면 도진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박경용

[일제 징집령에도 살아남은 마을의 최고령자]

고령박씨 소윤공파 27세손인 박재흔[1924년생] 씨는 도진마을 최고령자 중의 한 사람이다. 박재흔 씨는 일제 강점기인 1923년 도진마을에서 3남 중 둘째 아들로 태어나 어려운 경제 사정으로 학교 문턱에조차 가 보지 못했다. 땅 한 뙤기 없는 상황에서 박재흔 씨는 집안의 입 하나를 덜기 위해 7세 때부터 남의 집 꼴머슴부터 시작해 과수원 노동, 건축 미장공을 차례로 거쳤다.

13세 때 대구로 나간 박재흔 씨는 동구 신암동 부근의 측후소 근처와 달서구 감삼동 등지의 일본인 과수 농장에서 10년 동안 일했다. 당시 박재흔 씨가 받은 30원의 월급은 상급 공무원 급료 수준이었다. 22세 때는 일제 징집령으로 1년 동안 군사 훈련을 받았다. 불행 중 다행으로 박재흔 씨는 입대를 앞두고 장질부사에 걸려 1년 동안 전선 투입이 연기되었다. 이후 대구 80연대에 입대했지만, 그 무렵은 이미 전세가 기울어 근무 중 2개월 만에 일제가 항복함으로써 자유의 몸이 되었다. 같이 훈련 받았던 사람들은 일본과 만주 등지로 투입되어 상당수가 희생되었다고 한다.

[6·25전쟁 때는 방위 대원으로 후방 전선을 지키다]

박재흔 씨는 일제 징집에 이어 6·25전쟁 때도 군에 갔다. 전쟁의 막바지에 입대했지만, 나이가 많아 다행히 곧바로 귀향할 수 있었다. 귀향 후에는 관내 방위대 일원으로 후방 전선을 지켜야 했다. 성주지서를 비롯한 몇몇 관서들이 빨치산에 의해 습격당하자 박재흔 씨는 가야산이나 비슬산 등지로 나가 이들을 토벌하는 데 앞장섰다. 이 과정에서 때로는 위험한 고비도 넘겼다.

도진마을도 6·25전쟁의 포화를 벗어날 수 없었는데, 특히 낙동강을 등지고 있어서 도강을 하려는 인민군과 이를 봉쇄하려는 국군과의 치열한 공방권에 놓여 있었다. 박재흔 씨는 피난을 늦게 하는 바람에 폭파된 낙동교 앞에서 마을로 되돌아와야 했다.

당시 도진마을에도 인민군이 주둔하여 이를 제압하기 위한 아군 폭격으로 인명과 가옥 손실이 상당했다.

낙동강 가에는 도강하려다 제압당한 인민군의 시신이 지천에 널브러졌다. 강을 건너지 못한 그는 한동안 청룡산 산굴 속에서 몸을 피하기도 했다.

[도진마을의 건축 기술자로 살다]

24세에 결혼한 박재흔 씨는 그동안 모아 두었던 1만 원으로 고향에 1400평[4628.10㎡]의 논을 사들였다. 만주에서 귀환한 형제들도 아무런 경제 기반이 없던 상태에서 그가 사들인 이 땅은 온 식구들의 생명줄이나 다름없었다. 그는 부모에게도 효성이 지극하여 도진마을이 충효마을로 지정되는 과정에서 마을 사람들은 그를 효자로 추천하기까지 했다.

결혼 후에는 건축 미장 기술을 배워 평생직장으로 삼았다. 자동차가 없던 시절이라 자전거에다 미장 도구를 싣고 건축 현장을 돌아 다녔다. 농사는 가족들에게 맡겨 둔 채 관내를 중심으로 멀리는 대구까지 다니며 일을 했다. “농사철에나 집안일을 좀 거들었을 뿐이지, 나는 항시 건축 일을 했지요.”라는 말처럼, 박재흔 씨는 도진마을의 건축 기술자였다. 현재 살고 있는 집도 손수 지었다.

6·25전쟁 이후의 재건 과정에서는 일거리가 특히 많았다. 기술이 완숙한 시기에는 보통 노임이 하루 쌀 두되라면 그는 다섯 배에 해당하는 쌀 한 말을 받았다. 혹한기를 비롯해서 일이 없을 때는 쉬는 날도 있었지만, “4남매 공부시키고 식구들이 먹고살 수는 있었다.”고 말한다.

박재흔 씨는 스스로 성격이 좀 급한 편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인내심이 강하며, 특히 정직한 삶을 신조로 여긴다. 건강은 타고나야 한다고 말하는 박재흔 씨는 20대 초반 유도를 배우면서 허리를 다친 적이 있고, 70대 중반에 늑막염으로 입원한 것 외에는 한평생을 건강하게 살아왔다. 술은 즐겨 마시진 않으며, 담배는 많이 피웠으나 이젠 끊었다. 젊은 시절 과수 농장 일을 하면서 10년 넘게 과일을 많이 섭취했던 관계로 평생 동안 과일 먹는 것을 즐겨한다. “무공해 채소에다 청국장을 많이 먹는다.”는 아내 안촌댁[1934년생]의 말 속에 건강 비결이 있는지도 모른다.

[정보제공]

  • •  박재흔(남, 1924년생, 우곡면 도진리 주민, 건축 미장 기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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