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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운배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700404
한자 金沄培
영어음역 Kim Unbae
이칭/별칭 해강(海岡),김제민(金濟民),김신배(金申培)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조천리 2525
시대 근대/근대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항일운동가
출신지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조천리 2525 지도보기
성별
생년 1899년(고종 36)연표보기
몰년 1934년연표보기
본관 김해

[정의]

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개설]

본관은 김해. 호는 해강(海岡). 가명은 김제민(金濟民)이며 호적상의 이름은 김신배(金申培)이다. 아버지는 김희수(金熙穗)이다.

[활동사항]

일찍이 한문을 익혔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시즈오카[靜岡]에서 군밤 장수를 하면서 공부하고자 하였으나 사정이 여의지 않자 귀국하여 민중 계몽 운동에 힘썼다. 1919년 3월 조천 만세 운동에 가담하였고, 동지들이 체포되자 부산으로 탈출하여 1920년 2월 중국 상하이로 망명하였다.

상하이에서 박은식(朴殷植)·김창숙(金昌淑)·손영직(孫永稷) 등과 함께 활동하였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군자금 모금에 대한 협조 요청 편지를 경상남도 밀양에 거주하는 손종현(孫宗鉉) 외 13명에게 전달하라는 밀명을 받았다.

밀명 문서를 갖고 상하이에서 출발하여 일본 고베[神戶]와 오사카[大阪]를 경유하여 1920년 12월 상순 부산 영도로 입국하여 문봉기(文奉祺)와 함께 활동하던 중 체포되었다.

1921년 6월 25일 부산지방법원에서 제령(制令) 제7호 위반으로 징역 4년을 선고받아 항소하였고, 1921년 8월 9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4년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출감 후 만주로 망명하여 독립 운동 단체인 정의부에서 활동하였으며 『대한민보』와 『전우(戰友)』를 편집하였다. 1929년 이동삼(李東三), 김이대(金履大) 등과 함께 정의부 중앙위원으로 항일 운동을 하다가 체포되었다.

[상훈과 추모]

1993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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