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700940 |
---|---|
한자 | 夫章煥 |
영어음역 | Bu Janghwan |
이칭/별칭 | 자문(子文)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조천리 2912[조함해안로 54-6]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성격 | 항일운동가 |
---|---|
출신지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조천리 2912[조함해안로 54-6] |
성별 | 남 |
생년 | 1911년 |
몰년 | 1988년 |
본관 | 제주 |
대표경력 | 오지마금속주식회사 사장|조선피혁주식회사 관리자|국제상선주식회사 사장 |
[정의]
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개설]
본관은 제주. 자는 자문(子文)이다. 아버지는 부병익(夫秉益), 어머니는 김종윤(金鍾允)이다.
[활동사항]
조천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대구사범학교에 입학하였으나 2학년 때 중퇴하고 1931년 3월 일본으로 건너갔다. 신문 배달을 하면서 1932년 2월 시마나카[島中信雄]의 권유로 일본노동조합전국협의회 출판노조 오사카지부에 가입하여 오사카지부의 위원과 일본노동조합전국협의회 간사이위원으로 활동하였다.
1932년 4월 후카야[深谷]의 권유로 일본공산청년동맹에 가입하여 일본노동조합전국협의회 출판노조 조직원으로 활동하던 중 1933년 6월 검거되었다. 1935년 8월 31일 오사카지방재판소에서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형을 선고받아 옥고를 치렀다. 출감 후 오사카에서 오지마금속주식회사를 창업하였다.
광복 후 귀국하여 조선피혁주식회사 관리자, 국제상선주식회사 사장을 지냈고, 이 밖에 경기도 상공회의소와 서울 상공회의소 의원 등을 지냈다. 1948년 남북협상 때 김규식(金奎植)의 수행원으로 평양에 다녀오기도 하였다.
[상훈과 추모]
2005년에 건국포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