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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유지 사건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701930
한자 濟州道有志事件
영어음역 Jejudo Yuji Sageon
영어의미역 Jejudo Local Leaders Incident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박찬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생(시작)연도/일시 1950년 8월 8일연표보기
종결연도/일시 1950년 9월 3일연표보기
관련인물/단체 장용문|김재천|이윤희|신인철

[정의]

1950년 제주 지역 유지들이 계엄사령부에 연행되어 고문을 받았던 사건.

[개설]

1950년 8월 초순 제주 지역의 법원장, 검사장, 제주 읍장 및 변호사, 사업가, 교육자 등 유지급 인사 16명은 ‘인민군환영준비위원회’를 결성하였다는 혐의로 제주 계엄사령부(사령관 : 신현준 대령)에 연행되었다. 연행된 이들 가운데는 고문으로 사망한 자가 있을 정도로 혹독한 조사를 받았다.

[경과]

이들 제주 지역 유지들은 8월 8일과 9일에 걸쳐 계엄사령부에 의해 갑자기 체포·구금되었다. 약 열흘 정도 정보과 소속 장교 및 하사관들에게 고문과 총살 위협을 받았는데, 8월 14일에는 피의자 장용문이 심한 고문을 받다가 사망하였다.

당시 김충희 제주도지사는 이 사건이 특정인을 구속하기 위한 모함으로 보고, 이성주 경찰국장과 협의하여 진상을 밝혀달라는 내용의 진정서를 조병옥 내무부장관과 신성모 국방부장관에게 보냈다. 또 공병순 제주특무대장도 이 사건이 사실과는 다르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국방부에 제출했다.

[결과]

현지 조사를 위해 급파된 선우종원 치안국 수사지도과장은 이 사건이 계엄사령부 정보과장 신인철 대위의 음해·조작 사건임을 밝혀냈다. ‘인민군환영준비위원회’는 전혀 실재하지 않은 조직으로서 불순분자의 중상모략으로 드러났다.

피의자 이윤희 외 14명은 9월 3일 오후 6시에 석방되었다. 그러나 피의자 대부분은 심한 육체적·정신적 고통에 시달렸고, 김재천 제주지방법원장은 고문 후유증으로 정신착란을 일으켜 일찍 사망하였다.

[의의와 평가]

제주도 유지사건으로 제주 사회는 극도로 위축되었다. 도민들은 현직 법원장·검사장이 계엄군에 검속되어 죽을 위기에 처하는 사태를 직접 체험하였다. 더욱이 이 사건은 8월 20일 대규모 집단 학살과 함께 진행되었기 때문에 8월 한 달 동안 제주는 전율과 공포의 시간이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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