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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동건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702323
한자 蔡東健
영어음역 Chae Donggeon
이칭/별칭 순녀(順汝)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나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무신|제주목사
성별
생년 1809년(순조 9)연표보기
몰년 1880년(고종 17)연표보기
본관 평강(平康)
대표관직 제주목사|평안도병마절도사|충청도수군절도사|경상우도병마절도사|삼도수군통제사|형조판서

[정의]

조선 후기 제주목사를 역임한 무신.

[가계]

본관은 평강(平康). 자는 순녀(順汝). 아버지는 포도대장 채학승(蔡學承)이다.

[활동사항]

음보(蔭補)로 무관직에 기용되어 내외 관직을 거쳤다. 1855년(철종 6) 8월 목인배(睦仁培)[1794~?]의 후임으로 제주목사에 부임하였다.

1856년(철종 7) 봄에 귤림서원(橘林書院) 모현암(慕賢岩) 편액을 썼고, 제주성 동성문(東城門)에 있는 연상루(延祥樓)를 중수하였다. 1857년(철종 8) 6월에 충청도수군절도사에 임명되어 제주를 떠났다.

1862년(철종 13) 경상우도병마절도사가 되었다. 1869년(고종 6) 평안도병마절도사 재임 중 자성·후창 두 고을을 신설하고, 포수를 모아 변방을 수비하자고 건의하였다. 1871년(고종 8) 삼도수군통제사를 지냈고, 한때 진산군에 유배되었고, 1876년(고종 13) 형조판서에 올랐다.

[저술 및 작품]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이도1동오현단(제주기념물 제1호) 서쪽 벼랑, 속칭 병풍바위에 있는 글씨 ‘증주벽립(曾朱壁立)]’은 1856년 제주목사 채동건과 제주판관 홍경섭(洪敬燮)[1815~?]이 새겨 넣은 글자이다.

증주벽립(曾朱壁立)은 원래 서울특별시 종로구 명륜동에 있는 성균관 북쪽 벼랑에 새겨진 송시열(宋時烈)의 글씨이다. 제주 출신의 변성우(邊聖遇)[1721~1787]가 성균관직강으로 있을 때 송시열의 글씨를 모사, 보관하고 있었는데, 송시열을 기리는 뜻에서 채동건홍경섭이 음각으로 새겨 넣은 것이다.

그 의미는 ‘증자와 주자가 벽에 서 있듯이, 증자·주자를 존경하고 따르라.’는 것이다. 글자의 크기는 가로 50㎝, 세로 60㎝이다.

[상훈과 추모]

‘사상채공동건휼민선정비(使相蔡公東健恤民善政碑)’가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조천리 비석거리에 있으며, 1976년 9월에 제주기념물 제31호로 지정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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