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7108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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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淸州左氏 |
영어음역 | Cheongju Jwassi |
영어의미역 | Cheongju Jwa Clan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
집필자 | 김동전 |
집성촌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한동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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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향시기/연도 | 1270년경 |
성씨시조 | 좌형소(左亨蘇) |
입향시조 | 좌형소(左亨蘇) |
[정의]
좌형소를 시조와 입도조로 하는 제주의 세거 성씨.
[연원]
좌씨의 연원은 중국 노(魯)나라 학자 좌구명(左丘明)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좌구명은 당시 대유(大儒)로서 좌구명(左丘明)이 주석한 『춘추좌씨전』은 『논어』와 『맹자』처럼 이름 있는 고전으로 지금도 많은 사람들의 필독서이다.
좌씨가 우리나라에 들러오게 된 것은 1273년(원종 14)으로 여원연합군(麗元聯合軍)이 삼별초를 평정한 후 제주도에 탐라총관부를 설치하여 몽고에 귀속시키고 일본 정벌을 위한 준비로 목마장을 설치하여 명마(名馬)를 사육하면서부터이다. 한국내 좌씨는 본관이 모두 청주이며 육지부의 좌씨도 제주도에서 분가한 것으로서 근원은 동일하며, 우리나라의 좌씨 발상지는 제주도라 할 수 있다.
[입향경위]
제주좌씨 입도조인 좌형소(左亨蘇)는 첫 입국 성씨로 청주좌씨의 시조이며 입도 1세이다. 고려 충렬왕 초기인 1270년경 원나라의 천관시랑(天官侍郞)으로 있다가 고려가 원에 복속된 후 제주도에 목마장이 설치되자 감목관으로 파견되어 구좌면 한동리에 입도 정착하였다. 후손에게 세습되던 감목관직을 6세손 좌한기(左漢棄) 대에 이르러 고려에 반납하면서 완전 귀화되었다.
제주는 탐라총관부가 폐지되어 고려에 반환된 후에도 감목관 및 목호들의 지배하에 있다가 최영 장군이 1374년(공민왕 23) 8월 목호의 난을 진압한 후 고려의 속현으로 편입되었다. 이때 좌한기(左漢棄)는 정착 생활 근거지인 구좌면 한동리를 떠나 지금에 한경면 두모리로 이주하여 정착하여 고려인으로써 생활 기반을 잡았고, 이때부터 가세가 번영하였다.
[현황]
제주시 구좌읍 한동리 서북부 지역을 좌가장(左哥場)이란 속칭으로 부르고 있는데 이 지역이 좌씨 소유의 토지였음을 보여준다. 지금도 이 지역에 청주좌씨가 많이 거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