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흥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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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 지산리에서 거북바위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거북바위에 얽힌 사연」은 삼국시대 대가야국의 장군이었던 ‘마량’과 관련된 인물담이자, 마량 장군이 죽은 자리에 솟은 바위를 ‘거북바위’라고 불렀다고 하는 지명유래담이다. 1988년 고령문화원에서 발행한 『우리 지방의 민담·전설 및 지명 유래』와 1997년 고령문화원·계명대학교 한국학연구원에서 간행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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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 신리에서 옥잠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신동의 비녀」는 대가야읍 신리 지역에 왕비와 궁녀가 비녀를 떨어뜨리고 가자 그 곳을 옥잠이라고 했다는 지명유래담이다. 대가야의 멸망 당시 왕은 ‘도설지’였고, 건국 후 520년 만에 신라에 병합되었다. 2006년 김광순이 집필하고 도서출판 박이정에서 발행한 『한국구비문학』-경북 고령군편에 실려 있다. 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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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 고령 출신의 우륵(于勒)이 지었다는 12곡의 가야금곡. 「우륵 12곡」은 고령 정정골을 중심으로 활동한 우륵이 지은 가야금 12곡으로, 곡의 제목만이 전승되고 있다. 곡명의 명칭은 가야시대 가야 지역 명으로, 국문학자 양주동이 증명하였다. 『삼국사기(三國史記)』 권32 악지에는 “우륵이 지은 12곡은, 첫째는 하가라도[함안군, 신라 법흥왕 때의 아라가야군], 둘째는 상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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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김윤이 가야의 여인 은야를 중심으로 대가야의 멸망을 그린 장편 소설. 『은야』의 시대적 배경인 5~6세기경은 신라가 삼국 통일의 기반을 닦으며 강국으로 떠오르고, 작은 나라 대가야는 점차 몰락의 길로 접어들던 시기이다. 이 시대를 배경으로 우륵의 딸 은야와 대가야의 마지막 왕 도설지, 신라의 최고 권력자 진흥왕 사이에서 펼쳐지는 비극적 운명의 사랑 이야기가 대가야의 멸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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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김훈이 가야금의 예인 우륵과 대가야의 멸망을 그린 장편 소설. 우륵의 생애를 통해 멸망하는 가야국의 현실을 보여 주고 있는 『현의 노래』는 작가의 역사적 상상력을 통해 조국을 등지고 망명하여 음악을 연주한 한 가인(歌人)의 파란만장한 생애가 고스란히 그려져 있다. 특히, 우륵·니문·아라·비화·이사부·야로 등 낯선 이름의 등장인물들과 계급과 명령, 싸움과 죽음, 무기와 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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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5년부터 757년까지 경상북도 고령 지역에 설치되었던 행정구역. 신라 진흥왕은 562년(진흥왕 23) 대가야를 멸망시킨 뒤 나라 이름을 그대로 군의 명칭으로 삼아 대가야군으로 편제하고, 예하에 적화촌[지금의 경상남도 합천군 야로면·가야면 일원, 고령군 쌍림면 일부]과 가시혜성(加尸兮城)[지금의 경상북도 고령군 우곡면·개진면 일원]을 두었다. 대가야의 직접 지배 영역이었던 오늘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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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세기 중반 이후 가야 연맹의 침체기 속에서 서서히 새로운 강자가 부상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현재의 고령 지역에 위치한 반로국(半路國)이었는데, 그 성장의 계기는 가야산 아래 야로현(冶爐縣)의 철광 개발이었다. 이미 한 말의 씨앗을 뿌리면 그 100배가 넘는 수확을 거두어들이는 비옥한 토지를 바탕으로 완만하게 성장해 오던 반로국의 입장에서 철을 생산할 수 있는 기반을 갖게 되었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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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가야읍 연조리의 ‘연조(延詔)’는 1914년 대가야읍내에 있던 동부동(東阜洞)과 봉두동(鳳頭洞)을 합해 ‘연조리’라 이름 하면서 처음 생긴 지명이다. 하지만 ‘연조’라는 이름의 기원은 지금으로부터 1600년 전 연조리가 대가야의 도읍이 되고, 이곳에 왕궁이 만들어지는 시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연조’는 대가야국 시절 국왕이 조서를 반포할 때 붙이던 게시판인 조서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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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2년부터 757년까지 경상북도 고령 지역에 설치되었던 행정구역. 대가야군(大加耶郡)은 대가야(大加耶)가 신라에 멸망한 562년(진흥왕 23)부터 757년(경덕왕 16)에 이르기까지 경상북도 고령 지역에 설치되었던 행정구역으로 치소는 대가야읍 일대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신라 진흥왕은 562년 대가야를 멸망시킨 후 나라 이름을 그대로 군의 명칭으로 삼았다. 이에 대해서는 대가야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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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 지역에서 문학, 영상, 공연, 전통, 음악 등을 모두 포함한 문화예술 활동. 경상북도 고령군의 문화 관련 예술단체와 각종 시설물 및 기념물 등의 문화를 즐길 수 있는 시설의 분포와 내용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고령의 문화예술은 우륵(于勒) 그리고 가야금과 가야금 음악으로 대변된다. 대가야에서 비롯된 유서 깊은 가야금의 역사와 전통을 현대까지 계승하여 활발하게 활동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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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다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원래 다사지현 소재지로 신라 진흥왕이 대가야를 점령하고 이곳에 행궁을 두었으므로 상국(上國)으로 부르다가 마을 이름으로 너무 지나치다 하여 상곡(上谷)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그러나 신라가 행궁을 두었다는 기록은 찾아볼 수가 없다. 마을 개척 당시 위쪽에 있는 마을이므로 붙인 이름이라고도 한다. 신라 초기 다사지현에 속하였고, 조선시대에 성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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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다산면 상곡리 있는 전의이씨 동성마을. 신라시대 진흥왕이 대가야 영토를 점령할 때 지금의 상곡에 행궁을 두었다고 하여 상국으로 부르다가, 후대에 와서 마을 이름에 ‘나라 국(國)’자가 들어가는 것이 너무 과하다고 하여 상곡으로 고쳤다고 한다. 마을을 개척할 당시 지리적으로 위쪽에 자리 잡은 마을이어서 붙인 이름이라고도 한다. 처음 박씨가 많이 살았고 고려 말에 배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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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덕곡면 예리에 있는 가야시대 산성. 예리산성은 대가야시대의 석축 산성이다. 대가야시대에 신라군이 침입하는 것을 방어하기 위해 예리산성을 축조하였으나 끝내 실패하고 말았다는 설화가 전해오기도 한다. 실제 예리산성은 대가야시대에 축조되어 신라의 침입을 막는 산성으로 기능했던 것으로 보인다. 예리산성의 건립 연대는 문헌 자료가 전하지 않고 발굴 조사도 이루어지지 않아 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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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가야금의 악성(樂聖). 우륵(于勒)의 출생과 성장 및 구체적인 활동상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지만 『삼국사기(三國史記)』 ‘악지(樂志)’에 성열현(省熱縣) 사람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신라의 고기(古記)에 가야국 가실왕(嘉實王)이 당의 악기를 보고 가야금을 만들었다고 한다. 왕이 여러 나라의 방언이 각각 다른 소리를 내니 어떻게 일정하게 할 것인가?라면서 악사 성열현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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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에서 소리를 소재로 사상과 감정을 나타내는 예술. 고령 지역의 음악은 가야금과 가야금 연주곡으로 대표된다. 우리나라 3대 악성 중 한 사람인 우륵이 태어나고 활동했던 지역이기에 고령 음악의 큰 흐름을 주도하고 있는 것은 역시 현악기 가야금이다. 대표적인 작품으로 「우륵 12곡」과 현대에 새롭게 창작 국악 형식으로 작곡된 「가야금 합주를 위한 대가야의 소망」·「대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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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2년부터 757년까지 경상북도 고령 지역에 설치되었던 행정구역. 일리군(一利郡)은 대가야가 신라에 멸망하는 562년(진흥왕 23)에서 757년(경덕왕 16)에 이르기까지 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과 다산면 일대에 설치되었던 행정구역으로 달리 이산군(里山郡)으로도 불렸다. 이 시기 일리군의 치소는 오늘날 고령군 성산면 박곡리 원동마을로 보기도 하지만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에 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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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에 속하는 법정리. 화갑리 중간에 있는 마을이므로 중화갑이라 하였다. 화갑(花甲)은 봄이면 진달래꽃이 온 산을 뒤덮어 화산이라 불린 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대가야의 왕이 피난 갈 때 궁녀들이 이 마을에 머물렀는데, 궁녀들을 꽃에 견주어 화갑이라 불렀다고도 한다. 조선 말기 고령군 읍내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상화동을 병합하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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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해인사에 소장되어 있는 ‘강화경판 고려대장경(江華京板 高麗大藏經)’[일명 강화경판]은 13세기 중반 몽고의 침략으로 야기된 민족적 수난기에 피난 수도였던 강화경(江華京)에 설치된 대장도감(大藏都監)에서 조성되어, 1236년(고종 23)부터 1251년(고종 38)까지 16년간에 걸친 공역으로 이루어졌다. 강화경판이 강화도에서 해인사로 이운된 시기에 대해서는 고려 말기 설[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