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씨
-
경상북도 고령군 개진면에서 뒤남골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뒤남골 이야기」는 고령군 개진면에 전승되는 노비 설두남에 대한 인물담과 그의 죽음을 추모하기 위해 뒤남골이라 하였다는 지명유래담이다. 2006년 김광순이 집필하고 도서출판 박이정에서 발행한 『한국구비문학』-경북 고령군편에 실려 있다. 이는 2002년 11월 13일 경상북도 고령군 개진면 반운리 주민 유병규[남,...
-
경상북도 고령군 운수면 유리에서 서주골의 지명 유래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서주골 이야기」는 인심이 사나운 박씨들과 한 노승의 예언, 그리고 지혜로운 박씨 집안 며느리와 관련한 풍수담이자 지명유래담이다. 2006년 2월 고령군청이 계명대학교 산학협력단에 위탁한 ‘고령 지역 설화 DB 구축 및 아동용 설화집 제작을 위한 스토리 보드 구축 사업’의 1차년도 연구결과 보고서...
-
경상북도 남서부에 위치한 군. 고령군은 경상북도 남서쪽 끝에 위치하며 경상남도와 접해 있고, 동쪽은 낙동강을 경계로 대구시와 맞닿아 있다. 서쪽에 있는 가야산에서 발원한 대가천(大伽川)과 합천군 야로면에서 내려온 안림천의 물길이 주변에 비옥한 평야를 만들며 흘러내려 대가야읍에서 합쳐져 회천이 되어 낙동강으로 흘러든다. 이처럼 고령군은 서쪽의 높은 산과 동쪽의 낙동강으로 보호되기 때...
-
경상북도 고령군 우곡면 도진리는 고령박씨들이 모여 사는 집성촌으로, 고려 후기인 1350년(충정왕 2)경 박경(朴景)이 입향한 이후 고령박씨의 본향을 이루었다. 이후 도진리의 고령박씨 문중은 지금까지 650년간 이곳에서 세거해 오고 있는데, 이 때문에 도진리 박씨들은 다른 문파와 구분하여 자신들을 특별히 ‘도진박씨’라고도 부른다. “고령 지역의 대표적인 문중으로는 도진박...
-
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 연조리 고령향교에 있는 조선 후기 전적. 고령향교에서 소장하고 있는 필사본과 서적은 향교의 인적 구성과 교육 및 재정운영을 알 수 있는 자료이다. 고령향교에는 현재 필사본 16건, 책판 1종 266장, 그리고 서적이 28종이 남아 있다. 고문서와 필사본으로는 『유안(儒案)』, 『향안(鄕案)』, 『고령향약안(高靈鄕約案)』, 『고령향약임원록(高靈鄕約任員錄)』,...
-
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 본관리 성산이씨 집안에서 전해 내려오는 가양주. 토속주 혹은 민속주는 특정 지방에서 오래 전부터 전승되어 온 술로서, 사용하는 재료와 제조법에서 특성을 지닌다. 토속주는 보통 특정 지역에서 세거해 온 집안의 종가를 중심으로 제조법이 개발, 전승되는데, 이는 술이 종가의 연례적인 봉제사와 접빈객의 역할 수행에 필수적인 음식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관동스무주...
-
고려 후기 고령박씨가 정착한 후 도진리는 박씨들의 세거지가 된 곳으로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도진리에는 대가야 시대 유적들이 현재까지 전해 오고 있는 데서도 알 수 있듯이 그 이전부터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도진리에 언제부터 사람들이 살기 시작했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다만, ‘도진리 바위구멍 유적’과 인근 사촌리에 있는 ‘사촌리 고인돌’ 등을 통해 최소한 청동기 시대부터 사람들이...
-
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병자호란 후 성주 지역에서 박씨 성을 가진 이들이 옮겨 와 정착하였으므로 박실(朴室) 또는 박씨골·박곡이라 하였다. 조선 말기 성주군 가현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06년(고종 43) 고령군에 편입하였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박곡동이라 하고 성산면에 편입하였다. 1988년 5월 1일 성산면 박곡리가 되었다. 의봉산[535m] 줄...
-
도진리는 고령박씨들의 집성촌이다. 2010년 현재 마을의 전체 호수는 106호이며, 고령박씨는 89호 정도로 전체의 약 90% 정도를 차지한다. 그 외에 곽씨, 김씨, 노씨, 정씨, 한씨 등이 살고 있다. 고령박씨 외의 타성 사람들은 마을에서 식당이나 가게 등 장사를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고령박씨들은 다른 성씨들에 대해서도 배타적이지 않고 잘 어울려 지낸다고 한다. 그...
-
경상북도 고령군 다산면 상곡리 있는 전의이씨 동성마을. 신라시대 진흥왕이 대가야 영토를 점령할 때 지금의 상곡에 행궁을 두었다고 하여 상국으로 부르다가, 후대에 와서 마을 이름에 ‘나라 국(國)’자가 들어가는 것이 너무 과하다고 하여 상곡으로 고쳤다고 한다. 마을을 개척할 당시 지리적으로 위쪽에 자리 잡은 마을이어서 붙인 이름이라고도 한다. 처음 박씨가 많이 살았고 고려 말에 배씨...
-
통일신라의 승려. 순응(順應)은 766년 당에 들어가 선을 익히고 귀국한 뒤 성목태후를 비롯한 신라 왕실의 후원을 받아 해인사 창건 불사를 시작하였다. 이로 보아 신분은 그리 낮은 편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최치원(崔致遠)은 말년을 해인사에 머물면서 순응과 관련한 자료를 남겼다. 특히, 최치원이 찬한 『석순응전(釋順應傳)』은 현전하지 않지만, 내용의 일부가 1530년(중...
-
경상북도 고령 지역에서 목숨으로 정조를 지켰거나 남편을 위해 지극한 정성을 다한 부녀자. 열녀란 위난을 당하여 목숨으로 정조를 지켰거나 또는 오랜 세월에 걸쳐 고난과 싸우며 수절한 부녀자로 일반적으로 열녀와 열부(烈婦)를 통칭한다. 조선시대에 이르러 충·효·열 관념이 삼강오륜(三綱五倫)이란 형태로 정치적·사회적 규범으로 체계화되면서 열녀는 사회적으로 더욱 중요성을 강화해 갔다. 고...
-
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 용리 반룡마을에서 음력 1월 15일에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동제는 마을의 안녕과 태평을 기본으로 하여 재앙과 재액을 방지하고, 풍년을 기원하며, 괴질이 없고 무사고와 번영을 기원하는 의미해서 행한다. 고령 지역에서 동제는 당제, 골맥이, 동신제, 당산제, 산제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용2리 반룡 동제’는 ‘고령군 쌍림면 용2리...
-
개항기 고령 출신의 부상단(負商團) 반수(班首). 유의순(兪義淳)[1824~1885]의 초명은 도인(道仁)이며, 홍순(弘淳)으로도 불렸다. 고령 지역의 토성(土姓)인 기계유씨(杞溪兪氏) 주부공파(主簿公派) 후손이다. 유의순은 고령 관아의 아전(衙前)으로 일하다가 1874년부터 1883년까지 10년간 고령 일대의 오일장을 장악한 지역 부상단의 반수를 맡아 하였다. 행상 조직이던 조선...
-
경상북도 고령군에는 조선부보상단의 후신(後身)으로 알려진 상무사 조직이 현재까지 남아 옛 상인 단체의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1866년 조직되어 지역의 시장을 장악했던 고령상무사 좌사계와 1899년 조직되어 활동해 오던 고령상무사 우사상계가 바로 그들이다. 고령상무사 좌사계는 등짐을 지고 다니던 부상(負商)이, 고령상무사 우사상계는 보따리를 매고 다니던 보상(褓商)이 그 주요 구성...
-
고령 지역의 열녀. 최흠(崔欽) 처 박씨는 어려서부터 마음이 어질고 사리가 밝을 뿐만 아니라 미모도 뛰어나 마을 사람들의 호감을 받으며 자랐다. 나이 19세가 되어 최흠과 결혼하였으나, 불행하게도 남편이 결혼한 지 20일 만에 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박씨는 남편의 장례를 치르는 동안 식음을 전폐하고 슬픔을 다하였다. 그리고 장례가 끝나자 남편의 허리띠로 목을 매어 자결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