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철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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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고령 지역에서 결성된 청년 운동 단체. 1927년 조선청년연맹(朝鮮靑年聯盟)이 “앞으로의 조선청년운동은 민족적 협동 전선의 선두대가 되어야 한다”고 제창함에 따라 각 지방의 청년 단체는 그 성격을 초월하여 단일 청년 동맹을 결성한다는 것을 새로운 청년 운동의 방침으로 결정하였다. 이에 따라 1927년 7월에 대구 지역의 청년 운동 단체들이 청년 운동의 방향을 전환하여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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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상북도 고령 지역에서 결성된 청년 운동 단체. 1923년부터 청년회가 침체되고 있는 상황에서 1924년 4월 조선청년총동맹이 결성되었다. 이후 민족주의 진영의 청년 운동은 와해되기 시작했고 사회주의운동이 급격하게 발전함에 따라 청년 운동은 대중 본위의 사회 운동을 지향하였다. 침체기에 직면했던 고령 지역의 청년 운동도 고령청년회의 유용묵이 조선청년총동맹 창립위원회에 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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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8월 16일 경상북도 고령군에서 조직된 치안 유지 단체. 해방에 즈음하여 안재홍 등과 함께 건국준비위원회를 조직한 여운형이 일본의 지배하에 있던 중요 물자의 소각·파괴 등을 막기 위해 해방 직후 자연 발생적으로 조직된 지방 조직을 기반으로 건국준비위원회 직속으로 치안대·학도대·청년대·노동자의 직장 자위대 등을 조직하였다. 여운형은 당시 YMCA 체육부 간사 및 유도 사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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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상북도 고령 지역에서 조직된 신간회 지회. 1927년 2월 15일 서울에서 좌우 합작체로서 신간회가 결성된 뒤 경상북도 지방에서는 같은 해 6월부터 1929년 7월까지 김천지회를 시작으로 총 21개의 지회가 결성되었으며 회원 3,400여 명이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신간회 고령지회도 그중 하나였다. 신간회 고령지회는 신간회 본부의 활동 방향에 따라 고령청년회와 연계를 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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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고령 출신의 독립운동가. 신철휴(申哲休)[1898~1980]는 지금의 고령군 대가야읍 연조리에서 태어났다. 호는 해영(海影)이며, 우동(愚童)이라는 별명으로도 불렸다. 아버지는 신진구(申鎭求)이다. 신철휴는 어려서부터 성품이 강직하고 도량이 넓었으며 한학과 글씨에 능하였고, 효도와 애국심이 강하였다. 20세인 1918년 5월, 민족의 비통한 참상을 개탄하여 만주로 건너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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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조리 원로들은 대가야 왕궁 터를 감싸고 있는 뒷산 자락을 ‘봉두골(鳳頭골)’ 혹은 ‘봉두동’이라고 부른다. ‘봉의 머리’라는 봉두골이란 이름부터가 예사롭지 않은데, 이곳은 독립 운동가를 비롯해 고위 관료, 정치인, 군인, 실업가 등 쟁쟁한 인물들을 많이 배출한 곳이기도 하다. 항간에서는 대가야의 정기를 받은 곳인 만큼 풍수지리적으로 터가 좋아서 인물이 많이 배출된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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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에 결성된 ‘대가야문화가꾸기회’는 77~80세 되는 지역 원로들의 지역 사랑, 문화 사랑 모임이다. “나이 먹은 사람으로서 기억이 있을 때 대가야 문화를 잊히지 않도록 해야지요.”라는 회장 서경규[1931년생] 씨의 말이 이 모임의 존재 이유이기도 하다. 이들은 잊혀 가는 대가야의 역사와 문화를 발굴, 전승하는 일에 열과 성을 다하는 한편으로 젊은 세대들이 잘 알지 못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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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출신의 사회운동가. 8·15해방으로부터 미군정이 시작되는 10월 중순까지 2개월간은 치안이 극도로 불안한 시기였다. 일제강점기 주민의 자유를 억압하고 수탈과 고문을 일삼았던 경찰에 대한 불신 때문에 경찰 업무는 조직화된 지역 조직이 접수하였는데, 고령에서도 8월 15일 이튿날 치안대가 조직되었다. 치안대는 60여 명의 대원으로 구성되었으며 99식 장총을 지니도록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