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성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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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 연조리 고령향교에 있는 조선 후기 전적. 고령향교에서 소장하고 있는 필사본과 서적은 향교의 인적 구성과 교육 및 재정운영을 알 수 있는 자료이다. 고령향교에는 현재 필사본 16건, 책판 1종 266장, 그리고 서적이 28종이 남아 있다. 고문서와 필사본으로는 『유안(儒案)』, 『향안(鄕案)』, 『고령향약안(高靈鄕約案)』, 『고령향약임원록(高靈鄕約任員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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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 중화리에 있는 김택령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일제강점기 비석. 대가야읍에서 우륵박물관을 지나 중화리 중마을 마을회관을 끼고 우회전해서 150m쯤 가면 좌측 길옆 산기슭에 세워져 있다. 비는 귀접이형으로 자연 암반인 화강암을 파서 비신을 세웠는데, 비의 높이 82㎝, 너비 33㎝, 폭 12㎝로 비신만 남아 있다. 비석 전면 중앙에 세로로 ‘고의성김공택령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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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성산 사부동 도요지와 성산 기산동 도요지에서 생산되는 도자기를 질나루를 중심으로 다른 지역으로 수출하면서 사람들이 많이 모여들어 마을 주민들이 큰 이득을 얻었다 하여 득성이라 하였다. 조선 말기 성주군 소야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06년(고종 43) 고령군에 편입하였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득성동이라 하고 성산면에 편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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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 지역에서 여러 대에 걸쳐 계속해서 살아오고 있는 성씨. 우리나라의 성씨 제도는 중국 제도의 영향을 받았으며, 한자 문화의 유입 이후인 삼국시대에 나타난다. 고대 국가에서는 주로 왕족이나 극히 일부의 중앙 귀족에게서만 보인다. 성씨 제도가 본격적으로 행해지기 시작한 것은 고려가 후삼국을 통일한 이후이다. 나말여초의 격심한 사회 변동에 따른 신분제의 재편성 과정에서 태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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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에 속하는 법정리. 고려 말에 의성김씨 김남득(金南得)이 공민왕을 왕위에 오르게 하는 데 큰 공을 세워, 고령김씨로 분관하여 일등공신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로 봉해지고 고양부원군(高陽府院君)이 되었다. 나라로부터 3재[풍해(風害), 수해(水害), 한해(旱害)]가 없는 사패지(賜牌地)를 받고 정착하면서 안림천 변의 수목이 울창하고 물이 깊고 맑으며 숲이 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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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에 속하는 법정리. 고려 말에 의성김씨 김남득(金南得)이 공민왕을 왕위에 오르게 하는 데 큰 공을 세워, 고령김씨로 분관하여 일등공신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로 봉해지고 고양부원군(高陽府院君)이 되었다. 나라로부터 3재[풍해(風害), 수해(水害), 한해(旱害)]가 없는 사패지(賜牌地)를 받고 정착하면서 안림천 변의 수목이 울창하고 물이 깊고 맑으며 숲이 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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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합천군 해인사의 골짜기에서 발원하여 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 백산리를 지나 낙동강으로 흘러드는 하천. 안림천은 안림을 흐르는 하천이라는 데서 명칭이 유래되었다. 고려 말 의성김씨(義城金氏) 김남득(金南得)이 공민왕을 왕위에 오르게 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이후 고령김씨(高靈金氏) 김자광(金紫光)을 녹대부(祿大夫)로 고양부원군에 봉하였다. 김자광이 안림천 지역을 풍해(風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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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운수면에 속하는 법정리. 월성의 ‘월’자와 운산의 ‘산’자를 따서 월산동이라 하였다. 조선 말기 성주군 운라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06년(고종 43) 고령군에 편입하였고, 1914년의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월성동과 운산동을 병합하여 월산동이라 하고 운수면에 편입하였다. 1988년 5월 1일 운수면 월산리가 되었다. 가야산(伽倻山) 남쪽 끝자락에 있는 마을로 남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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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운수면 월산리에 있는 의성김씨 동성마을. 앞에 있는 듬이라 하여 선듬이라 하였다. 듬의 돌들이 마을을 둘러싸고 있어서 붙인 이름이라고도 한다. 달리 선도(先道)·월성이라고도 한다. 약 600년 전 공조참의를 지낸 김용기가 덕곡면 후암리에 살다가 산이 마을을 가려 겨울에 몹시 추웠으므로 소가천 건너 앞듬 밑으로 이주하여 마을을 개척한 뒤로 후손들이 세거하면서 집성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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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에 거주하는 주민 또는 집단의 수. 고령군의 인구는 1981년 47,000명에서 2001년 37,000명으로 지난 20년 동안 약 10,000여 명[약 21.1%] 감소하였고, 연평균 증가율은 -1.1%이다. 하지만 인구 감소 현상에도 불구하고 세대수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데, 1981년 10,000세대였으나 2001년에는 13,000여 세대로 약 2,600가구[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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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고령 출신의 유학자이자 의병. 본관은 성산(星山). 시조는 전호익(全虎翼)이며, 7대조 전이갑(全以甲)은 고려 태조를 도와 태사(太師)가 되었다. 파조이자 5대조 성산백(星山伯) 전순(全順)은 공양왕 대 헌납(獻納)의 벼슬을 지냈으며, 고려가 망하자 향리에 은거하였다. 고조할아버지는 감찰 전현노(全玄老)이며, 증조할아버지는 형조참의 전전중(全殿中)이다. 할아버지는 학행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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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에 세거하는 동성동본(同姓同本)의 집성촌. 집성촌은 동성동본의 성씨 집단이 대대로 모여 사는 촌락을 의미한다. 집성촌의 형성은 삼국시대 또는 고려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본격적으로 형성되기 시작한 것은 조선 전기부터다. 특히 조선 후기인 17세기 이후 집중적으로 형성되기 시작했는데, 이는 적장자 중심으로 상속 제도가 변화하고, 『주자가례(朱子家禮)』가 보급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