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 득성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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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 득성리에서 모심기 과정 중에 익살스러운 내용으로 부르는 노동요. 「살콤 보고 지나가소」는 모심기 과정에서 여인의 분통같은 젖을 보고는 손톱만큼만 보라며 익살스럽게 부르는 농업 노동요이다. 이 노래에는 남녀의 성적인 내용이 등장하고 있는데, 이것은 노동의 고통을 잊을 수 있는 기능을 하고 있다. 또한 모심기가 생산을 위한 행동이므로 남녀의 성도 생산과 관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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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 득성리에서 인생무상을 노래하는 비기능요. 「선비 노래」는 젊을 때 인생을 즐기면서 놀자며 인생이 덧없음을 노래하는 민요이다. 비기능요는 기능요보다 후대의 것이며, 비기능요가 대량 생겨나거나 유행하기 시작한 시기는 개화기 이후의 일이다. 개화기 이전에는 전문적인 소리꾼들의 소위 잡가라는 것은 있어도 일반 민중이 널리 부르는 비기능요는 드물었다. 개화기 이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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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 득성리에서 팰구나무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성산면 득성리의 팰구나무 전설」은 목신인 신성한 나무에 손을 대면 재앙이 닥친다는 금기담이다. 팰구나무는 겉보기에 아주 오래되어 보이는데, 나무가 심어져 있는 언덕이 길 때문에 반쯤 없어져 버려 그 부분이 무너지지 않게 벽돌을 쌓아 보수해 놓았다. 또한 나뭇가지가 쓰러지지 않도록 철근으로 지탱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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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 득성리와 강정리 사이에 형성된 평야. 강정들은 고령군 성산면 강정리 마을 주변에 있는 평야로서, 강정마을의 지명을 가지고 와서 붙여진 이름이다. 강정마을은 조선 중기 때 한 선비가 개척한 마을로, 마을을 개척한 수년 후 마을 뒷산인 봉화산[108m] 기슭 낙동강 변에 정각을 짓고, 공부를 하였다고 한다. 즉, 낙동강 강변에 정자가 있는 마을이라 하여 강정(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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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 득성리에 있는 대한예수교장로회 소속 교회. 고령성산교회는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교회, 주님의 말씀을 이루는 교회’라는 목적 아래 고령군 성산면 주민들에게 복음을 전도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1915년 고령군 성산면 삼대2동의 허수가 낙동강 멍덤나룻가에서 선교사로부터 전도지를 받고 김경호와 함께 사부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하였다. 1916년 1월 12일 고령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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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 득성리에 있던 가야시대~조선시대 나루터. 도진나루터가 위치한 고령군 성산면 득성리는 조선 인조 때 병자호란 직후 전라도 지방 나씨(羅氏)가 이주하여 개척하였다 전한다. 당시 사부리 도요지(沙鳧里陶窯址)와 기산리 도요지(箕山里陶窯址)에서 생산되는 도자기를 타지방으로 수출하기 위하여 많은 사람들이 도진나루로 모여들자 마을 주민들이 많은 이득을 얻어 마을 이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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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 득성리에 있는 의성김씨 동성마을. 조선 인조 때 병자호란이 일어난 직후 전라도 지방에서 나씨 성을 가진 사람이 이주하여 마을을 개척할 당시 마을 앞 도진나루터[성산면]를 통하여 성산 사부동 도요지와 성산 기산동 도요지 등에서 생산되는 도자기를 대량 수출하였는데, 많은 사람들이 마을을 왕래하면서 큰 이득을 보았다 하여 득성(得成)이라 하였다. 득성리는 조선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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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 득성리에서 매 3일과 8일에 개시되던 오일장. 성산장은 일제강점기에 개설되었다. 성산장이 열리던 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 득성리(得成里)는 원래 성주군에 속하였던 지역으로, 1906년(고종 43) 다산면과 함께 고령군으로 이속되었는데 조선시대 역(驛)이 있었던 무계(茂溪)와 인접한 곳이기도 하다. 조선시대 무계에는 무계장이 개설되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무계장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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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 득성리에서 다산면 송곡리에 연결되는 지방도. 지방도905호선은 성산면 강변에 개설된 도로이므로 강변의 이름을 따서 성산강변로라고 부르게 되었다. 고령군 성산면 득성리의 동고령IC 부근에서 시작하여 다산지방산업단지와 다산면 송곡리의 고령축산물공판장을 거쳐 송곡리에 이르는 지방도이다. 고령군 성산면에서 이웃 성주군 용암면에 이르는 도로이며, 남성주IC와도 연결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