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군 개진면 양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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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개진면 양전리에서 원귀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유람에서 저승길로」는 조채문의 혼령이 고향을 찾아 자손들에게 자신의 억울한 죽음을 알리고 범인을 잡아 처벌하여 원한을 풀었다는 객사원귀담(客死寃鬼談)이다. 1982년 고령군에서 간행한 『대가야의 얼』, 1988년 고령문화원에서 간행한 『우리 지방의 민담·전설 및 지명 유래』, 2006년 고령군에서 발행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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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개진면에서 송암정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일본 장군 죽인 송암정」은 송암 김덕룡이 일본인 장군을 우물에 빠뜨려 죽였다고 하는 지명유래담이다. 송암정이라 부르는 우물은 개진면 양전1리에 있다. 둘레가 성인 12명이 손을 마주 잡고 두르는 정도이며, 깊이는 160m 정도 된다고 한다. 2006년 김광순이 집필하고 도서출판 박이정에서 발행한 『한국구비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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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개진면에서 장씨 박골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장씨 박골 전설」은 꿩이 알을 낳은 곳이라는 뜻으로 장씨 박골이라고 한다는 지명유래담이다. 이는 「알터 전설」의 전반부와 내용이 같다. 2006년 김광순이 집필하고 도서출판 박이정에서 발행한 『한국구비문학』-경북 고령군편에 실려 있다. 이는 2002년 11월 13일 경상북도 고령군 개진면 직리 주민 이춘희[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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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년 고령 개산포에서 김면이 이끈 의병이 왜적을 물리친 전투. 개산포대첩은 의병장 송암(松菴) 김면(金沔)이 노고산성(老姑山城)과 무계리산성(茂溪里山城)에 의병을 집결시켜 왜군의 낙동강 운행에 일대 타격을 가한 전투이다. 개산포는 김면이 살았던 지금의 고령군 개진면 양전리에서 낙동강 쪽으로 불과 6~7㎞밖에 되지 않는 거리이면서 현풍의 도동 쪽에서 고령으로 바로 건너오는 길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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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대갸야읍 장기리·개진면 양전리·성산면 사부리에 걸쳐 있는 산. 비단같이 아름다운 산이라 하여 금산(錦山)이라는 이름이 붙여졌으며, 망산(望山)이라고도 부른다. 대가야시대에 수비병들이 망을 보던 곳이라 하여 망산이라 하였다고 전한다. 외적이 침입해 오면 서쪽의 주산(主山)[310.3m]을 향하여 적의 내습을 알렸다고 하는데, 고령의 주산을 이산(耳山)이라고 부르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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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고령 출신의 유학자이자 의병장. 본관은 고령(高靈). 자는 지해(志海), 호는 송암(松菴). 아버지는 경원부사를 지낸 김세문(金世文)이다. 김면(金沔)[1541~1593]은 관직에 뜻을 두지 않고 산야에 은거하며 조용히 소일하던 중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지금의 고령군 개진면 양전리에서 일가 및 가동(家僮) 등 700여 명과 분연히 궐기하였다. 이때 조종도(趙宗道)·곽준(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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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 지역의 민중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져 전해 내려오는 노래. 경상북도 고령군은 가야 문화의 발상지이자 중심지이다. 그리고 고령군은 교통의 중심이기도 하며, 옛날부터 농업이 발달한 곳이었다. 이러한 문화적·지리적 환경을 감안하면 고령 지역의 민요는 매우 다양하게 발달하였다고 볼 수 있다. 민요는 노동요, 의식요, 유희요로 구분된다. 노동요는 「모찌는 소리」와 「모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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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개진면 양전리에 있는 농업 관개용 저수지. 사못은 고령군 개진면 양전리, 대가야읍 장기리, 성산면 사부리의 경계에 위치하고 있는 금산[289m]에서 발원하여 남동쪽으로 흘러 개진면 반운리에서 회천으로 유입하는 하천인 신안천의 상류부에 위치하는 저수지이다. 금산재의 동쪽에 위치하며, 금산의 남쪽 사면에서 발원하는 소하천을 수원으로 삼고 있다. 고령군 개진면 양전리 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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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 기산리의 깃대봉 북쪽 사면에서 발원하여 개진면 신안리에서 회천으로 흘러드는 하천. 개진면 신안리 신안마을은 독산 을달에 새로 형성된 마을로 새마[新村]라 하였다. 원래 마을은 경작지로 이용하는 범람원의 가운데에 형성되었으나, 여름내 하상이 높아 지금의 위치로 옮겼는데, 이에 마을을 중흥시켜 편안한 마을이 되라는 뜻으로 신안(新安)으로 불렸다. 신안천(新安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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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년 고령 지역에서 김면이 의병을 일으켜 벌인 전투. 송암(松庵) 김면(金沔)이 고령에서 의병을 일으킨 후 첫 전과는 6월 9일 개산포대첩에서 거두었지만, 고령을 떠나 거창으로 가기 전 4월 말에서 5월초 연강(沿江)에서 한 차례 왜군과 전투를 벌인 것이 연강전투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장 김면은 1592년(선조 25) 4월 하순 가솔을 피난시키고 사촌 아우들과 가동(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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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년 고령 지역에서 과도한 세금 징수에 반발하여 일어난 반봉건 농민 항쟁. 조선 왕조의 모순이 드러나는 19세기는 민란의 시대라고 불릴 만큼 농민층의 봉기가 빈발하였다. 당시 농민 봉기는 지방관의 학정(虐政)과 지방 사족층의 횡포, 외세의 정치 경제적 침략에 따른 위기의식의 고조 등 여러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일어났다. 특히 삼정(三政)의 문란은 경제적으로 농민들의 고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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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고령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최기순(崔基淳)[1893~1927]은 본관이 강릉(江陵)으로, 경상남도 합천군 덕곡면에서 최능한(崔能翰)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으나, 15세쯤에 부모를 따라 고령군 개진면 양전리로 옮겨 살았다. 최기순은 평양의 숭실학교(崇實學校)를 졸업하고, 1925년 33세에 만주로 갔다. 1920년 청산리전투 후 일본군의 간도 지방에서의 학살과 1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