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산면 기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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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 기산리에 있는 정자나무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다리병신 된 농부」는 정자나무에 가해하여 병을 얻은 망나니 자식을 위해 노모가 구복(求福)을 빌었다는 신령한 나무의 신수담이자 풍수담이다. 이는 성산면 기산리(箕山里) 마을 입구에 있는 커다란 정자나무에 설화이다. 기산리는 마을 뒷산 산세가 키[箕]와 같이 생겼기 때문에 마을 이름을 ‘기싯’, 혹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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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 기산리에서 일곱 그루 나무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일곱 그루의 바람막이 나무」는 커다란 바위[청석]의 기운을 차단하려고 심었다는 7그루 나무에 대한 풍수담이다. 성산면 기산리에는 정자나무 이외에 도로변에는 지금도 4그루의 나무가 줄지어 서 있다. 2006년 김광순이 집필하고 도서출판 박이정에서 발행한 『한국구비문학』-경북 고령군편에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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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 득성리와 강정리 사이에 형성된 평야. 강정들은 고령군 성산면 강정리 마을 주변에 있는 평야로서, 강정마을의 지명을 가지고 와서 붙여진 이름이다. 강정마을은 조선 중기 때 한 선비가 개척한 마을로, 마을을 개척한 수년 후 마을 뒷산인 봉화산[108m] 기슭 낙동강 변에 정각을 짓고, 공부를 하였다고 한다. 즉, 낙동강 강변에 정자가 있는 마을이라 하여 강정(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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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 뒷산이 키처럼 생겨 기싯 또는 기산이라고 하였다. 조선 말기 성주군 도장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06년(고종 43) 고령군에 편입하였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지경동과 기족동 일부를 병합하여 기산동이라 하고 성산면에 편입하였다. 1988년 5월 1일 성산면 기산리가 되었다. 북쪽은 의봉산에서 남쪽으로 뻗은 해발 고도 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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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 기산리에 있는 기계유씨 동성마을. 마을 뒷산이 키처럼 생겼다 하여 기싯 또는 기산이라 하였다. 임진왜란 전에 기계유씨가 들어와 마을을 개척한 뒤 후손들이 세거하면서 집성촌을 형성하였다. 기싯마을이 속한 기산리는 조선 말기 성주군 도장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06년(고종 43) 고령군에 편입하였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지경동·기족동 일부를 병합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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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개진면 직리와 성산면 기산리에 걸쳐 있는 산. 깃대봉은 중생대 백악기 경상계 낙동통에 속하는 진주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진주층은 하산동층을 정합적으로 덮고 있고, 이암·셰일·사암이 주를 이루며 부분적으로 역질사암도 나타난다. 본층에 협재된 엷은 탄질셰일은 이층이 형성되던 환경이 배후 습지성 소택지였음을 시사하므로, 중생대 백악기에는 깃대봉 일대가 배후 습지성 소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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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 득성리에 있던 가야시대~조선시대 나루터. 도진나루터가 위치한 고령군 성산면 득성리는 조선 인조 때 병자호란 직후 전라도 지방 나씨(羅氏)가 이주하여 개척하였다 전한다. 당시 사부리 도요지(沙鳧里陶窯址)와 기산리 도요지(箕山里陶窯址)에서 생산되는 도자기를 타지방으로 수출하기 위하여 많은 사람들이 도진나루로 모여들자 마을 주민들이 많은 이득을 얻어 마을 이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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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 기산리의 깃대봉 북쪽 사면에서 발원하여 개진면 신안리에서 회천으로 흘러드는 하천. 개진면 신안리 신안마을은 독산 을달에 새로 형성된 마을로 새마[新村]라 하였다. 원래 마을은 경작지로 이용하는 범람원의 가운데에 형성되었으나, 여름내 하상이 높아 지금의 위치로 옮겼는데, 이에 마을을 중흥시켜 편안한 마을이 되라는 뜻으로 신안(新安)으로 불렸다. 신안천(新安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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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개진면에 속하는 법정리. 고려시대 강화도에서 가져온 팔만대장경판을 개포에서 해인사로 옮길 때 이 마을로 바로 갔다고 하여 직통(直通)이라 하였는데 후에 직동(直洞)이 되었다. 마을에 양조장이 있어 직동도가라고도 하였다. 열뫼 또는 열미는 마을 북쪽 산 모양이 칼로 잘라 벌려 놓은 듯하여 붙인 이름이다. 개산(開山)은 열뫼의 한자 표기이다. 교통의 요로였으므로 상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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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운수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을 둘러싼 산봉우리가 여덟 개가 있어 팔뫼라 하였다. 팔산은 팔뫼의 한자 표기이다. 조선 말기 성주군 도장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06년(고종 43) 고령군에 편입하였고, 1914년의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팔산동이라 하고 운수면에 편입하였다. 1988년 5월 1일 운수면 팔산리가 되었다. 의봉산(儀鳳山)[535m] 끝자락에 자리 잡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