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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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 고곡리에 있는 조선 후기 의병장 김면(金沔)의 유적. 송암(松庵) 김면은 1541년(중종 36)에 태어난 학자로 참봉(參奉), 공조좌랑(工曹佐郞)에 임명되었으나 사퇴하였다. 임진왜란 당시 곽재우, 정인홍과 함께 경상우도의 3대 의병장 중 한 사람이었으며 곽재우, 정인홍과는 달리 남명 조식의 문인인 동시에 일찍이 퇴계 문하에서 성리학을 연마하여 퇴계 문인들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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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고령 출신의 의병. 본관은 고령(高靈). 자는 군신(君信), 호는 학암(鶴巖). 아버지는 박일(朴溢)이며, 낙랑당 박택이 생부(生父)이다. 박정번(朴廷璠)[1550~1611]은 내암(來庵) 정인홍(鄭仁弘)의 문인이며 한강(寒岡) 정구(鄭逑)에게 수학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창의(倡義)하여 송암(松庵) 김면(金沔) 진영에서 의병 참모로 모획(謨劃) 활동을 하였다. 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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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고창(高敞). 자는 대원(大源), 호는 죽유(竹牖)·죽계(竹溪)·백암노인(白巖老人)·율계(栗溪) 등이다. 고려 중기 한림학사(翰林學士)를 지낸 오학린(吳學麟)[1009~?]을 시조로 삼는다. 10대조 오세문(吳世文)은 동각학사(東閣學士)를 지냈는데, 고려 무신란 직후 해좌칠현(海左七賢)의 한 사람으로 활동한 오세재(吳世才)의 형이다. 증조할아버지 삼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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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고령 출신의 문신.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계형(季亨), 호는 회와(晦窩). 할아버지는 윤지선(尹止善)이고, 아버지는 경주부윤 윤리(尹理)이다. 윤양래(尹陽來)[1673~1751]는 1699년(숙종 25) 진사를 거쳐, 1708년(숙종 34)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정원주서(承政院注書)에 초임되었는데, 이때 글씨를 빨리 써서 비주서(飛注書)라는 별명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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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고령 출신의 의병이자 무신. 본관은 여주(驪州). 자는 인로(仁老). 고려 말 현조(顯組)인 안동장군(安東將軍) 이미숭(李美崇)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이광영(李光榮)이다. 이경령(李景齡)[1541~1597]은 지금의 고령군 쌍림면에서 태어났다. 소년 시절부터 기골이 장대하고 용력(勇力)이 출중하였으며 무예를 익혀 솜씨가 비범하였다. 그러나 신왕조(新王朝)에 항거한 이미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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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년 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 무계리에서 김면이 왜선 두 척을 포획한 전투. 2차 무계전투에 대한 기록은 『문수지』와 『용사일기(龍蛇日記)』에만 보이고 『모계일기(茅谿日記)』나 『고대일록(孤臺日錄)』 등의 다른 자료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그리고 2차 무계전투의 노획 물품은 개산포대첩의 노획품과 함께 초유사(招諭使) 김성일(金誠一)에게 보내졌기 때문에 개산포대첩에서 획득한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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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년 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 무계리에서 손인갑과 정인홍의 부대가 왜군을 물리친 전투. 1592년(선조 25) 4월 13일, 왜군은 임진왜란을 일으킨 후 동래로부터 좌·중·우의 삼로(三路)로 갈라 한양을 향해 진격하였다. 이때 우로의 왜군은 동래-김해-무계-지례-금산-추풍령-영동-청주-경기도를 따라 진군하였고, 경상북도를 장악한 모리 데루모토[毛利輝元]는 개령현에 주둔하고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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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년 조선을 침략한 왜군에 맞서 고령 지역에서 벌어진 전쟁. 임진왜란은 1592년(선조 25) 4월 13일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가 부산포를 공격함으로써 시작되었다. 왜군의 주력 부대는 동래-기장-좌수영-울산-경주-영천-의흥-군위-문경의 좌로(左路)와 동래-양산-밀양-청도-경산-대구-안동-선산-상주의 중로(中路), 동래-김해-창원-영산-창녕-현풍-성주-지례-금산-추풍령-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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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 고아리에 있는 조선 전기 비석. 고아리 병마절도사비는 경상우도 병마절도사 정익의 선정을 기리기 위해 1591년 2월 선조 대에 건립되었다. 연엽형 지붕돌을 갖춘 비교적 큰 규모의 비석이다. 비석 전면 중앙에 세로로 ‘경상우도병마절도사정익무혁군병청덕선정비(慶尙右道兵馬節度使鄭榏撫洫軍兵淸德善政碑)’라 새겼다. 대가야읍 고아리의 비석보들 농로 옆 산기슭에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