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고령군 개진면 개포리에서 대장산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백발노인과 대장산」은 백발노인이 백마를 잡아탔다고 하여 대장산이라 부른다는 지명유래담이다. 대장산은 면사무소와 파출소 맞은편에 약 3㎞ 떨어져 있으며, 그다지 높지 않은 능선의 산이다. 대장산과 면사무소 사이에는 비닐하우스가 있는 밭과 2차선 도로가 있다. 도로를 중심으로 인가는 골목골목 위치해 있으며,...
도진리에는 모두 네 곳의 마을길이 있다. 도진1길에서 도진2길로 둘러보는 1코스인 웃마길과 도진3길과 도진4길을 둘러보는 2코스인 아랫마길을 따라 강변에 자리한 양반 마을을 둘러보기로 한다. 문연서원 유허지 는 도진리로 들어오는 지방도 67호선의 왼쪽에 자리하고 있다. 이곳에는 모두 5기의 비석이 세워져 있다. 가장 왼쪽에 있는 것이 ‘죽연박선생 효행...
1592년 고령 개산포에서 김면이 이끈 의병이 왜적을 물리친 전투. 개산포대첩은 의병장 송암(松菴) 김면(金沔)이 노고산성(老姑山城)과 무계리산성(茂溪里山城)에 의병을 집결시켜 왜군의 낙동강 운행에 일대 타격을 가한 전투이다. 개산포는 김면이 살았던 지금의 고령군 개진면 양전리에서 낙동강 쪽으로 불과 6~7㎞밖에 되지 않는 거리이면서 현풍의 도동 쪽에서 고령으로 바로 건너오는 길목...
고려 후기 고령박씨가 정착한 후 도진리는 박씨들의 세거지가 된 곳으로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도진리에는 대가야 시대 유적들이 현재까지 전해 오고 있는 데서도 알 수 있듯이 그 이전부터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도진리에 언제부터 사람들이 살기 시작했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다만, ‘도진리 바위구멍 유적’과 인근 사촌리에 있는 ‘사촌리 고인돌’ 등을 통해 최소한 청동기 시대부터 사람들이...
경상북도 고령군 우곡면 도진리에 있던 나루터. 고령군 우곡면 도진리는 고령박씨(高霊朴氏)의 세거지로 우곡면 소재지이다. 고려 말인 1350년(충정왕 2)대에 조산대부(朝散大夫) 사재감소윤(司宰監少尹)인 고령박씨 박경(朴景)[고령박씨 중조 환(還)의 8세손]이 개척하였는데, 모듬내[会川, 錦川]를 휘감아 흐르는 강변(江邊)의 아름다움이 도연명(陶淵明)[365~427]의 「도화원기(桃...
대가야읍에서 개진면을 지나 모듬내[회천] 변으로 난 지방도 67호선을 따라오면 우곡면의 도진리에 이른다. 낙동강의 지류인 모듬내[회천] 변에 자리 잡은 도진리는 특히 고령박씨[도진박씨]들이 650여 년간 터를 잡고 살아온 곳으로 유명하다. 도진리의 연원에 대해서는, 1180년경 주(朱)씨들이 처음 마을을 개척하고 주진(朱津)이라 불렀다는 이야기가 전...
도진리는 고령박씨 집성촌으로 고령 지역의 대표적인 양반 마을이다. 이 때문에 충과 효를 숭상하는 유교적 풍습이 강하게 뿌리내려 기독교가 정착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런 이유로 인해 교회가 처음 생긴 것은 비교적 늦은 시기인 1951년이었다. 도진리에 처음으로 기독교의 복음을 전한 개척 교인은 당시 우곡고등공민학교[우곡중학교 전신]의 김기윤 교장과 고령읍교회...
개진면을 지나 지방도 67호선을 따라 진입하면 왼쪽으로 모듬내[회천] 변을 따라 길게 자리 잡고 있는 마을이 눈에 들어온다. 바로 고령박씨들이 650년간 터를 일구고 충과 효를 실천하면서 살아 온 도진마을이다. 마을로 접어들기 직전의 도로 변 왼쪽에 있는 문연서원 유허지에는 ‘문연서원 유허비’를 비롯해 5기의 비석이 건립되어 있다. 이곳을 지나면 버스 정류장이 있고, 그...
효부 엄상암(嚴相岩) 씨는 1933년 7월 9일[음력] 경상북도 달성군 논공면 사촌에서 6남매 중 둘째 딸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자애로운 부모님의 큰 사랑을 받으며 자라나 19세에 결혼 후 해묵이한 이듬해 지금의 도진마을로 시집왔다. 남편 박태균(朴泰均) 씨는 6·25전쟁 중 입은 총상 후유증에 폐병마저 걸려 61세로 타계하기까지 무려 32년간이나 긴 투병 생활을 했다. 설상가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