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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계나루터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900267
한자 茂溪-址
영어음역 Mugyenaruteo
영어의미역 Mugye Ferry
분야 역사/전통 시대,지리/인문 지리,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터
지역 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 무계리
집필자 황상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나루터
소재지 주소 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 무계리 지도보기

[정의]

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 무계리에 있던 나루터.

[개설]

고령군 성산면은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성주군 소야면의 11개 동과 리, 도장면의 3개 동과 리, 고령군 구음면의 4개 동과 리를 병합하여 신라시대에 있었던 성산군의 이름을 따서 성산면이라 칭하고, 14개의 동리로 개편하여 관할하고 있다. 동쪽은 낙동강 건너 달성군 논공면, 남쪽은 고령군 개진면, 서쪽은 고령군 대가야읍고령군 운수면, 북쪽은 고령군 다산면과 성주군 용암면과 접하고 있다.

무계리(茂溪里)는 조선 중엽 1670년(현종 11)경 오씨(呉氏)와 김씨(金氏) 등이 개척하였는데, 당시 어떤 도인이 지나가다 서남쪽으로 뻗은 세천(細川) 3개는 닭의 오른쪽 날개이고, 남동쪽으로 흐르는 작은 내는 왼쪽 날개이며, 마을 뒤의 산은 닭의 몸통 같아 마치 닭이 춤추는 곳 같다 하여 마을 이름을 ‘무계(舞鶏)’라 하였다 한다. 또는 낙동강 강변에서 노닐던 학이 춤추는 듯이 산으로 날아가는 형상이 점차 닭이 춤추는 의미로 변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기도 한다. 이후에는 낙동강변의 번창하는 마을이라는 뜻으로 무계(茂渓)라 하고 있다.

[변천]

근대적 교통수단이 발달되기 전까지 낙동강 연안에 위치한 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 무계리와 대구광역시 달성군 논공읍으로 나룻배가 왕래하면서 사람이나 물건을 운반하였는데, 무계나루터무계마을에 나룻배를 부리기 위하여 건립되었다. 무계나루터는 내륙 지방에서 귀한 어류와 소금, 한양에 바치는 세미 등의 이동로가 되었다.

조선시대 무계나루송암 김면(金沔)이 임진왜란 때 왜적을 물리친 격전장인 동시에 대승을 거둔 곳으로서, 마을 뒷산에는 무계리산성(茂溪里山城)의 흔적이 있다. 김면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켜 왜군과의 항전에 나섰는데, 마을 뒷산에 의병들이 산성을 쌓아 북쪽의 자연 절벽을 방어에 이용하였다. 지금은 숲이 우거져 토성의 흔적을 거의 찾아볼 수 없게 되었지만, 당시에는 무계나루가 군사적으로도 요충지였다.

현재는 성산면 무계리 남쪽으로 낙동강을 연결하는 낙동강교[88올림픽고속도로], 고령교, 성산대교가 개통되어 이제 더 이상 무계나루터를 이용한 물자와 사람의 이동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현황]

2010년 현재 무계나루터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으며, 그 기능은 낙동강교[88올림픽고속도로], 고령교, 성산대교가 대신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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