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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미년 수세저항운동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900377
한자 丁未年水稅抵抗運動
영어의미역 Rejection Movement for Irrigation-tax in 1907
이칭/별칭 고령폭동사건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경상북도 고령군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권대웅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수세저항운동|반봉건 농민항쟁
발생(시작)연도/일시 1907년 4월 14일연표보기
종결연도/일시 1907년 4월연표보기
발생(시작)장소 경상북도 고령군
관련인물/단체 윤하영|대한자강회 고령지회|신영환(辛泳桓)|박경순(朴敬淳)|이봉조(李鳳朝)|백남준(白南俊)

[정의]

1907년 고령 지역에서 군수 및 세무관의 불법 징세에 반발하여 일어난 반봉건 농민 항쟁.

[목적]

고령군수 윤하영[재직 기간 1906년 5월~1907년 4월]의 불법 징세를 시정하도록 요구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발단]

윤하영의 불법 징세에 반발한 신영환(辛泳桓)과 박경순(朴敬淳) 등이 1907년 음력 2월 22일 군민들과 함께 군청으로 몰려갔다.

[경과]

1906년 고령군수 심택진(沈宅鎭)이 향리들과 결탁하여 뇌물을 받고 백성의 재물을 약탈하였다는 이유로 면직된 뒤, 1906년 5월 대한자강회 회원인 윤하영이 고령군수로 부임하였다. 윤하영은 고령 지역의 유력한 인사들과 함께 대한자강회 고령지회를 설립하여 계몽 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리고 보(洑)를 수축하여 관개(灌漑)를 정비하고 호포전(戶布錢)의 세금을 감면하는 등 개혁적인 군정을 펼쳤다.

그러나 윤하영이 취임한 이후에도 향리들의 수세 문제는 계속되었고, 1906년 10월부터는 군수 자신이 세금 징수를 전행(專行)하면서 중앙에서 파견된 세무관에게 군세부(郡稅簿)를 맡기고 불법 징세를 시작하였다. 1907년 4월 5일 윤하영은 중추원 부찬의(副贊議)로 체임되었지만, 또 여기에는 세무관과 결탁한 향리 출신의 군 주사 이봉조(李鳳朝)가 가담하고 있었다. 이에 1907년 4월 14일 고령군민 신영환과 박경순 등이 주도하여 군민들과 함께 요구를 전하려 군청으로 몰려갔다.

[결과]

현풍군수 겸 고령군수 서리 백남준(白南俊)과 영수원(領收員)이 불법 징수된 세금을 감면하기로 고시함에 따라 군민들이 돌아가면서 끝이 났다.

[의의와 평가]

정미년 수세저항운동은 친일 관리와 세무관의 불법 징세에 대한 농민들의 저항 운동으로 반봉건 농민 항쟁이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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