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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산동 33호분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900495
한자 池山洞三十三號墳
영어의미역 Ancient Tomb No. 33 in Jisan-dong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고분
지역 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 지산리
시대 고대/삼국 시대/가야
집필자 조영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고분
양식 수혈식 석실분[구덩식 돌방무덤]
건립시기/연도 5세기 중반
높이 1.28m[복원 2.5m]
지름 장축 8.8m|단축 7.4m
소재지 주소 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 지산리 산 8
소유자 국유
문화재 지정번호 사적 제79호
문화재 지정일 1963년 1월 21일연표보기

[정의]

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 지산리에 있는 대가야시대의 고분.

[위치]

지산동 33호분고령 주산성에서 서남으로 뻗어 내리는 주능선의 중턱에 형성된 설상대지(舌狀臺地)에 분포하는 중형급 봉토분 5기 중에서 서쪽에 위치한다. 지산동 32호분에서 서쪽으로 3.9m, 지산동 34호분에서 남쪽으로 3m 떨어져 있다. 고분의 서쪽은 급경사를 이루는데, 고분의 자리도 경사를 이룰 뿐 아니라 아래쪽에 민묘를 조성하여 봉분과 둘레돌이 상당 범위 유실된 상태이다. 그리고 반대편 동쪽의 평탄한 빈터는 대지상 지형에 분포하는 고분군의 공동 제사 터로 활용되었다.

[발굴조사경위 및 결과]

1978년 계명대학교 박물관이 대가야 고분에 대한 연차적 학술 조사 연구의 일환으로 지산동 32호분, 지산동 34호분, 지산동 35호분과 함께 발굴 조사를 하였다. 지산동 33호분지산동 35호분과 함께 순장곽을 구비하지 않은 수혈식 석실분[구덩식 돌방무덤]이며, 이미 오래전 도굴에 의해 돌방 내부가 교란된 상태였다. 따라서 깨진 토기류와 장신구류 및 농공구와 마구류 일부만이 출토되었다.

[형태]

지산동 35호분과 함께 순장곽을 구비하지 않은 구덩식 돌방 봉토분이다. 봉분은 경사진 아래편이 많이 유실된 상태였다. 남아 있는 둘레돌은 지형이 높은 곳에 2단, 낮은 곳에 1단으로 쌓은 당시의 둘레돌 축조 방식이 잘 나타나 있다. 둘레돌의 평면 형태는 돌방 길이에 맞춘 장축을 둔 타원형으로 설치하였다. 내부 구조는 좁은 무덤구덩이 속에 할석으로 축조한 세장 방형의 구덩식 돌방이다.

바닥은 자갈을 깔았으며 벽체는 네 모서리의 상단부를 약간 내밀고 석재 사이에는 진흙을 발라 견고하게 하였다. 돌방은 지금까지 발굴 조사된 고령 지산동 고분군 중에서 가장 정교하게 축조된 상태를 보여 준다. 봉분의 규모는 장축 8.8m, 단축 7.4m이고 뚜껑돌에서의 잔존 높이는 1.28m이지만 원래 높이는 2.5m 내외로 추정된다. 돌방의 규모는 길이 4.5m, 너비 0.86m, 깊이 1.4m이다.

[출토유물]

도굴에 의해 많이 없어졌고 남아 있는 유물도 거의 파손되었으나 비교적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었다. 장신구류는 유리제 및 다면옥 등의 각종 구슬이 있고, 무기류는 대도 자루·쇠화살촉·낫·도끼 등이며, 마구류는 등자·안장테·재갈 등이다. 가장 많은 유물은 토기류로 굽다리접시, 긴목항아리, 유대이부장경호(有臺耳附長頸壺), 유대삼이부장경호(有臺三附長頸壺), 짧은목항아리, 뚜껑접시, 그릇받침, 뚜껑 등이다. 그 밖에 널못이 있다.

[현황]

지산동 33호분은 발굴 조사를 끝낸 직후 내부 구조는 축조 당시의 상태와 비슷하게 복구하였고, 봉분은 추정 높이만큼 쌓은 뒤 잔디를 입혀 보존하고 있다. 고분 앞 탐방로에는 발굴 내용의 개요와 고분 번호가 새겨진 설명판이 세워져 있다. 1963년 1월 21일 사적 제79호로 지정되었다.

[의의와 평가]

지산동 33호분고령 지산동 고분군 분포 범위의 중앙부 설상대지에서 발굴 조사된 봉토분 4기 중에서 두 번째로 축조된 고분이다. 설상대지의 한쪽에 축조된 이유는 나중에 다른 고분을 축조하거나, 중앙부의 공동 제사 터를 의식하였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도굴로 중요 유물은 없어졌으나, 남아 있는 파손된 유물은 대가야 고분 문화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유물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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