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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900991
한자 選擧
영어의미역 Election
분야 정치·경제·사회/정치·행정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경상북도 고령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노인만

[정의]

경상북도 고령군에서 지역 주민이 공직에 임용될 사람을 투표를 통해 선출하는 행위.

[대통령 선거]

우리나라의 대통령 선거는 1948년 7월 20일 국회에서 초대 대통령을 선출한 이래로 지금까지 17회 실시되었다. 이 중 1960년 3월 15일 실시된 제4대 대통령 선거는 무효화되었으므로, 실질적으로 16회의 선거를 치른 셈이다. 대통령 선출 방법은 국회에 의한 간접 선거가 2회[제1대·제4대], 직접 선거가 10회[제2~3대·제5~7대·제13~17대], 통일주체국민회의에 의한 간접 선거가 4회[제8~11대], 대통령 선거인단에 의한 간접 선거가 1회[제12대]였다.

1. 초대 대통령 선거[1948년 7월 20일]

초대 정·부통령 선거는 제헌 헌법 제53조에 의하여 제헌 의회 의원 198명에 의해 간접 선거 방식으로 실시되어 초대 대통령에는 이승만, 그리고 초대 부통령에는 이시영이 각각 당선되었다. 1951년 초대 부통령인 이시영이 사퇴를 한 후 1951년 5월 15일에 실시된 제2대 부통령 선거에서는 김성수 후보가 당선되었다.

2. 제2대 대통령 선거[1952년 8월 5일]

1952년 발췌 개헌안이 통과된 후 정·부통령 간선제가 직선제로 바뀌게 되었다. 제2대 대통령 선거 입후보자는 자유당 이승만, 무소속 이시영, 무소속 조봉암, 무소속 신흥우 등 4명이었으며 자유당의 이승만 후보가 523만 8769표를 얻어 당선되었다. 또한 부통령 선거는 9명이 입후보하여 이승만의 지원을 받은 함태영이 유효 투표의 41.3%인 294만 3813표로 당선되었다. 당시 고령군의 경우 고령 지역의 선거인수는 27,930명, 투표율은 92%였다. 이중 이승만 후보가 17,764표, 조봉암 후보 2,993표, 신흥우 후보가 1,032표를 각각 획득하였다.

3. 제3대 대통령 선거[1956년 5월 15일]

제3대 대통령 선거와 제4대 부통령 선거는 1956년 5월 15일 실시되었으며, 선거는 216만 3805표를 얻은 자유당의 이승만 후보가 당선되었고, 이날 같이 실시한 제4대 부통령은 6명이 입후보하여 차점자인 자유당의 이기붕 후보를 제압한 민주당의 장면 후보가 당선되었다. 고령군에서는 이승만 후보가 유효 투표 20,904표 중 10,813표를 획득하여 약 51%의 지지를 얻는데 그쳐 전국 지지율 70%에도 못 미치는 결과를 보여주었으며, 조봉암 후보가 10,091표를 얻어 이승만 후보에 거의 육박하는 표를 획득하였다.

4. 제4대 대통령 선거[1960년 3월 15일]

1960년 3월 15일 실시된 제4대 대통령 선거는 그 유명한 3·15 부정 선거로 제4대 대통령에는 이승만이, 제5대 부통령에는 이기붕이 당선되었으나 1960년 4월 26일 국회의 의결에 의해 제4대 대통령 선거 및 제5대 부통령 선거 자체가 무효화되었다.

1960년 6월 15일 제3차 개정 헌법에 의하여 대통령 중심제의 권력 구조가 내각 책임제로 바뀌면서, 1960년 8월 12일 참의원과 민의원의 양동 합동 회의에서 대통령선거가 실시되었으며, 그 결과 윤보선이 내각 책임제 하의 제4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제4대 대통령 선거와 동시에 실시한 제5대 부통령 선거는 같은 해 6월 15일 내각제 개헌으로 이후 부통령제가 폐지됨에 따라 대통령 선거만 역대로 이어졌다.

5. 제5대 대통령 선거[1963년 10월 15일]

1962년 12월 26일 개정 헌법에 따라 내각 책임제가 대통령 중심제로 바뀌고, 개정 헌법[제5차 개헌]에 의하여 1963년 10월 15일에 제5대 대통령 선거를 실시하였다. 총유권자 수는 1298만 5015명으로, 이 가운데 1103만 6175명[투표율 85%]이 투표에 참가해 박정희 후보가 470만 2640표[득표율 46.6%]를 얻어 454만 6614표[득표율 45.1%]를 얻은 윤보선 후보를 근소한 차로 이기고 제5대 대통령에 당선됨으로써 제3공화국을 출범시켰다. 경상북도 고령군의 후보자별 득표 상황을 보면 박정희 후보 17,559표, 윤보선 후보 7,461표, 오재영 후보 1,272표, 장이석 후보 516표, 변영태 후보 485표를 각각 획득하였다.

6. 제6대 대통령 선거[1967년 5월 3일]

제6대 대통령 선거는 1963년 10월 15일 제5대 대통령에 당선된 박정희의 4년 임기가 끝나감에 따라 1960년 12월 개정된 대통령선거법에 의거, 1967년 5월 3일에 실시된 대통령 선거였다. 투표 결과는 총유권자 1393만 5093명 가운데 1164만 5215명[투표율 83.6%]이 참가해 박정희 후보가 568만 8666표[득표율 51.4%]를 얻어 452만 6541표[득표율 40.9%]를 얻은 윤보선 후보를 물리치고 제6대 대통령에 당선됨으로써 재집권에 성공하였다. 고령군의 후보자별 득표 상황을 보면 박정희 후보 20,857표, 윤보선 후보 6,949표를 각각 획득하였다.

7. 제7대 대통령선거[1971년 4월 27일]

1969년 10월 17일 대통령 삼선 허용을 골자로 한 제6차 헌법 개정안이 국민 투표에 의하여 개정됨에 따라 1971년 4월 27일에 제7대 대통령 선거를 실시하였다. 선거 결과 634만 2828표[득표율 53.2%]를 얻은 박정희 후보가 539만 5900표[득표율 45.2%]를 얻은 김대중 후보를 물리치고 당선되었다.

부산, 강원도, 충청북도, 경상북도, 제주도에서는 박정희 후보가 우세하였고 경기도에서는 백중세였으며, 신민당의 김대중 후보는 서울, 전라남도, 전라북도에서 압승하였다. 고령군에서는 박정희 후보 24,020표, 김대중 후보 4,254표로 박정희 후보의 지지가 우세하였다.

8. 제8대 대통령 선거[1972년 12월 23일]

제8대 대통령 선거는 유신헌법에 따라 새로 구성된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선출하게 되었다. 1972년 12월 23일 장충체육관에서 실시된 제8대 대통령 선거는 박정희 후보가 대의원 등 515명의 추천으로 단독 입후보해 전체 대의원 2,359명이 참석한 가운데 2,357표[무효 2표]라는 절대적인 찬성으로 당선되었으며, 그 해 12월 27일 4선 대통령에 취임하였다. 또 이때부터 이전까지의 역대 대통령 임기가 4년에서 6년으로 늘어났다.

9. 제9대 대통령 선거[1978년 7월 6일]

1978년 5월 18일 정부는 제2대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 선거를 실시하여 2,583명의 대의원을 선출하고, 대통령 선거를 준비하였다. 박정희 통일주체국민회의 의장은 1978년 7월 6일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 집회를 가져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재적 대의원 2,583명중 2,578명이 참석한 가운데 제9대 대통령 선거를 실시 단독으로 출마한 박대통령이 찬성 2,577표, 무효 1표로 당선되었다.

10. 제10대 대통령 선거[1979년 12월 6일]

1979년 박정희 대통령이 시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한 후 제10대 대통령 선거는 당시의 유신헌법과 통일주체국민회의법에 의하여 과거와 동일한 선거 방식으로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실시하게 되었다. 대통령 후보자로는 최규하 대통령 권한 대행이 단일 후보로 등록되었으며, 1979년 12월 6일 장충체육관에서 개최되었다. 이때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재적 2,560명중 2,549명이 참석한 가운데 찬성 2,464표로 최규하 후보를 제10대 대통령으로 선출하였다.

11. 제11대 대통령 선거[1980년 8월 27일]

정국의 혼란과 동시에 최규하 대통령이 사임을 한 후 통일주체국민회의는 1980년 8월 27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제7차 회의를 열고 제11대 대통령선거를 실시하였다. 선거 결과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상임위원장을 지낸 신군부 출신의 전두환이 단독 후보로 출마해 통일주체국민회의 재적 대의원 2,540명 중 2,525명[투표율 99.4%]이 출석한 가운데 2,524명의 찬성을 얻어 당선되어, 같은 해 9월 1일 제11대 대통령으로 취임하였다.

12. 제12대 대통령 선거[1981년 2월 25일]

1980년 10월 22일 국민 투표에 의한 헌법 개정과 1980년 11월 25일 개정된 대통령 선거법에 의하여 대통령 선거인단 선거일을 1981년 2월 11일로 하여, 이 선거인단에 의하여 대통령 선거를 1981년 2월 25일 실시하였다. 1981년 2월 11일 전국 1,905개 대통령 선거인 선거구에서 국민의 직접 선거에 의해 5,272명의 대통령선거인이 선출되고, 1981년 2월 25일 국회의원 선거구 단위별로 투개표가 실시되었다. 선거인단이 전국 77개 선거구에서 선거를 실시한 결과 선거인 5,278명 90.2%를 차지한 전두환 후보가 제12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고 유치송 404표, 김종철 85표, 김의택이 26표를 각각 얻었다.

13. 제13대 대통령 선거[1987년 12월 16일]

제6공화국 창설을 위한 대통령 직선제를 중요 골자로 하는 헌법 개정안이 1987년 10월 27일 국민 투표로 확정되고 제13대 대통령 선거일을 12월 16일로 정하여 공포하였다. 선거 결과는 총유권자 수 2512만 7158명 가운데 2306만 6419명[투표율 89.2%]이 투표에 참가하였고, 이 가운데 무효 46만 3008표를 제외한 유효투표 수는 2260만 3411표였다.

득표는 노태우 후보가 828만 2738표[득표율 36.6%]로 1위, 김영삼 후보가 633만 7581표[득표율 28%]로 2위, 김대중 후보가 611만 3375표[득표율 27%]로 3위, 김종필 후보가 182만 3067표[득표율 8%]로 4위, 신정일 후보가 4만 6650표[0.2%]로 5위를 차지하였다. 고령군의 경우 투표인수 28,656명에 투표자 수 26,546명으로 투표율은 92.6%였다. 후보자별 득표수를 보면 노태우 후보 19,100표, 김영삼 후보 5,755표, 김종필 415표, 김대중 후보 391표를 각각 획득하였다.

14. 제14대 대통령 선거[1992년 12월 18일]

제14대 대통령 선거는 역사적인 ‘문민정부’의 탄생이라는 역사적 의의를 지니면서 1992년 12월 18일에 치러졌다. 총유권자 수는 2867만 6547명으로, 이 가운데 2409만 5170명[투표율 81.9%]이 투표에 참가하였고, 무효 31만 9761표를 제외한 유효득표 수는 2377만 5409표였다.

후보별 득표수는 김영삼 후보가 997만 7332표[득표율 42%]로 1위, 김대중 후보가 804만 1284표[득표율 33.8%]로 2위, 정주영 후보가 388만 67표[득표율 16%]로 3위, 박찬종 후보가 151만 6047표[6%]로 4위를 차지하였고, 백기완·김옥선·이병호 후보 순으로 그 뒤를 이었다. 고령군의 경우 김영삼 후보 14,427표로 압도적인 득표를 하였고 다음이 정주영 후보 3,397표, 김대중 후보 1,975표를 각각 획득하였다.

15. 제15대 대통령 선거[1997년 12월 18일]

1997년 12월 18일 실시한 제15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한나라당의 이회창, 새정치국민회의의 김대중, 국민신당의 이인제, 국민승리21의 권영길, 공화당의 허경영, 바른나라정치연합의 김한식, 그리고 통일한국당의 신정일 후보 등 모두 7명이 출마를 했다.

총선거인 수는 3229만 416명으로, 이 가운데 2604만 2633명[투표율 80.7%]이 투표에 참가하였고, 무효 40만 195표를 제외한 유효 투표수는 2564만 2438표였다. 후보별 득표는 김대중 후보가 1032만 6275표[득표율 40.3%]로 1위, 이회창 후보가 993만 5718표[득표율 38.7%]로 2위, 이인제 후보가 492만 5591표[득표율 19.2%]로 3위, 권영길 후보가 30만 6026표[득표율 1.2%]로 4위를 차지하였고, 신정일·김한식·허경영 순으로 그 뒤를 이었다. 고령군의 경우 이회창 후보가 14,383표로 압도적인 득표를 하였고 다음이 이인제 후보 3,889표, 김대중 후보가 3,502표를 각각 획득하였다.

16. 제16대 대통령 선거[2002년 12월 19일]

2002년 12월 19일 실시된 제16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새천년민주당의 노무현, 한나라당의 이회창, 민주노동당의 권영길, 하나로국민연합의 이한동, 국태민안호국당의 김길수, 사회당의 김영규 등 6명이 출마하였다. 선거 결과 총 3499만 1529명의 유권자 가운데 2476만 141명이 투표에 참가해 70.8%의 투표율을 보였다.

이 가운데 노무현 후보가 유효 투표 총수의 48.9%인 1201만 4277표를 얻어 1144만 3297표[46.6%]를 얻은 이회창 후보를 57만 980표[2.3%] 차로 누르고 당선되었다. 고령군의 경우 이회창 후보 15,034표로 압도적인 득표를 하였고 다음이 노무현 후보 4,505표, 권영길 후보가 646표를 각각 획득하였다.

17. 제17대 대통령 선거[2007년 12월 19일]

제17대 대통령 선거는 2007년 12월 19일 실시되었으며, 후보는 대통합민주신당의 정동영, 한나라당의 이명박, 민주노동당의 권영길, 민주당의 이인제, 창조한국당의 문국현, 참주인연합의 정근모, 경제공화당의 허경영, 새시대참사람연합의 전관, 한국사회당의 금민, 무소속의 이회창 등 10명이었다.

총 선거인은 부재자 81만 755명을 포함하여 3765만 3518명이었으며, 총 투표자는 2373만 2854명으로 투표율이 63%에 그쳤다. 투표 결과는 한나라당의 이명박이 1149만 2389표를 얻어 득표율 48.7%로 당선되었고, 정동영이 617만 4681표[득표율 26.1%]로 2위를, 이회창이 355만 9963표[득표율 15.1%]로 3위를 기록하였다. 고령군의 경우 이명박 후보가 13,420표로 68.0%의 압도적인 득표를 하였고 다음이 이회창 후보가 3,518표[득표율 17.8%]를 획득하였다.

[국회의원 선거]

1. 제헌 국회의원 선거[1948년 5월 10일]

대한민국 제헌국회 총선은 1948년 5월 10일 실시된 대한민국 제1대 국회의 국회의원을 선출하기 위한 선거이다. 선거는 49개의 정당과 사회단체가 난립한 가운데 948명이 입후보하여 평균 4.7:1의 경쟁률을 보였으나 입후보자의 44%가 무소속이었다. 선거 결과 무소속이 85명, 대한독립촉성국민회 55명, 한국민주당 29명, 대동청년단 12명, 조선민족청년단 6명, 대한독립촉성농민총동맹 2명, 기타 단체 소속의 11명 등 모두 198명[제주도 2개구는 제주 4·3사태로 선거 연기]이 당선되어 1948년 5월 31일 제헌국회를 열었다. 고령군의 경우 김상근 후보, 김상덕 후보, 곽태진 후보 3명의 후보자가 출마하여 민족통일본부 소속의 김상덕 후보가 당선되었다.

2. 제2대 국회의원 선거[1950년 5월 30일]

제2대 국회의원 선거는 제헌국회에서 1950년 4월 10일 의결하여 12일에 법률 제121호로 공포된 새로운「국회의원선거법」에 의하여 1950년 5월 30일에 실시되었다.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고령군에서는 대한농민회 소속 정춘택, 국민당 소속 김상덕, 민주국민당 소속 곽태진, 유도회 소속 홍재영 등 4명의 후보자가 입후보하였고 민주국민당의 곽태진 후보가 유효 투표 25,321표 중 약 41%인 10,456표를 획득하여 당선되었다.

3. 제3대 국회의원 선거[1954년 5월 20일]

1954년 5월 20에 실시될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 대비하여 여당인 자유당은 그 조직을 강화하여 우리 선거 사상 처음으로 의원 후보자 공천제를 채택하였으며 원내 제1야당인 민주국민당도 이에 대항하여 의원 후보자 공천제를 실시하였다. 고령군에서는 8명의 후보가 난립한 가운데 선거가 실시되어 자유당 후보였던 김홍식 후보가 9,606표를 획득하여 2위를 차지한 제2대 의원 곽태진 후보를 4,366표 차로 누르고 당선되었다.

4. 제4대 국회의원 선거[1958년 5월 2일]

제4대 국회의원 선거를 위한 민의원과 참의원 선거법이 통과되었으나 참의원 선거는 사정상 실시되지 못하였다.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 이르러서는 정당 정치의 기틀이 점차 잡히기 시작하여 유명무실한 군소정당·단체는 다소 정비되었다. 고령군에서는 수리조합장을 지낸 정남택 후보가 자유당의 공천을 받아 출마하여 전 의원인 무소속의 김홍식 후보를 누르고 당선되었다. 정남식 후보는 12,068표를 득표하였고 김홍식 의원은 8,137표, 곽태진 후보는 6,562표를 각각 득표하였다.

5. 제5대 국회의원 선거[1960년 7월 29일]

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고령군에서는 4명의 후보자가 출마하였는데 2대 국회의원이었으며 민주당의 공천을 받아 출마한 곽태진 후보, 3대 때 자유당 공천으로 당선된 바 있는 김홍식, 4대 때 역시 자유당 공천으로 당선되었던 정남택, 그리고 사회대중당 후보로 출마한 문규용 등이었다. 이들 중 선거 결과는 무소속의 김홍식 후보와 민주당의 곽태진 후보가 치열한 경합을 벌인 끝에 곽태진 후보가 김홍식 후보보다 274표가 많은 근소한 차이로 당선되었다.

6. 제6대 국회의원 선거[1963년 11월 26일]

제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고령군은 개정된 선거법에 의해 달성군과 합하여 경상북도 제8선거구로 확정되었다. 입후보자는 모두 6명이었으며 고령군에서는 4대와 5대에 걸쳐 민주당으로 당선되었던 곽태진 후보가 민정당의 공천으로 출마하였으며, 민주공화당은 4대 때 달성군에서 자유당으로 당선된 바 있는 김성곤을 공천하였다. 선거 결과 고령군과 달성군의 전체 유권자 101,409명 중 80%가 투표에 참가하였으며 투표자의 약 54%인 44,674표를 얻은 김성곤 후보가 당선되었다.

7. 제7대 국회의원 선거[1967년 6월 8일]

고령군은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달성군과 합하여 경상북도 제8선거구로 확정되었다. 이 선거에서 고령·달성 지구에서는 모두 4명의 후보자가 출마하였는데 민주공화당에서는 김성곤 의원이, 신민당에서는 정원찬이 공천되었다. 선거 결과 고령 달성 지역 총 유권자 102,101명 중 약 93%에 해당하는 95,691명이 투표를 하였으며 62,354표를 얻은 김성곤 후보가 압도적인 표차로 제7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

8. 제8대 국회의원 선거[1971년 5월 25일]와 보궐 선거

제7대 대통령 선거 이후 정부는 5월 1일 제8대 국회의원 선거일을 5월 25일로 결정 공고하였다. 야당인 신민당의 진출이 현저하게 두드러진 제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고령군은 달성군과 합친 경상북도 제10선거구였다. 후보 등록 마감 결과 출마자는 4명이었는데, 선거 결과 고령 달성 지구 선거인 99,105명 중 80.6%인 79,901명이 투표에 참여하여 56,751표를 얻은 김성곤 후보가 당선되었다.

그러나 김성곤 의원이 공화당 항명 파동으로 중도에 의원직을 상실하게 되어 동년 12월 14일 보궐 선거를 치르게 되었다. 보궐 선거에는 박준규 후보, 현해봉 후보, 전세덕 후보, 박종철 후보, 김명철 후보가 각 정당의 공천으로 출마하게 되었고, 선거 결과 전체 유권자 96,887명 중 76.0%인 73,624명이 투표에 참가하여 44,738표를 얻은 박준규 후보가 당선되었다.

9. 제9대 국회의원 선거[1973년 2월 27일]

고령군은 개정된 국회의원 선거법에 의해 경산군과 달성군을 합하여 경상북도 제7선거구로 확정되었다. 총선거인 수는 182,754명이었으며 76.2%의 투표율을 나타내었다. 선거 결과는 달성군에서 많은 지지를 받아 34,559표를 얻은 박준규 후보와 경산군에서 많은 지지를 받아 29,709표를 얻은 무소속의 박주현 후보가 각각 1, 2위로 당선되었다.

10. 제10대 국회의원 선거[1978년 12월 12일]

제10대 고령군의 국회의원 선거는 박준규 후보, 김종기 후보, 박주현 후보, 이재연 후보 등 4명이 경쟁을 벌였으며, 선거 결과는 57,256표를 얻은 박준규 후보와 47,617표를 얻은 김종기 후보가 각각 1, 2위로 당선되었다.

11. 제11대 국회의원 선거[1981년 3월 15일]

제1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고령군은 개정 선거법에 따라, 성주군과 달성군을 합친 경상북도 제10선거구였다. 박준규 후보, 김종기 후보, 최운지 후보, 배재연 후보, 배의석 후보, 이길용 후보, 이용택 후보 등 6명의 후보가 경합을 벌인 결과 43,217표를 얻은 무소속의 이용택 후보와 41,495표를 얻은 김종기 후보가 각각 1, 2 위로 당선되었다.

12. 제12대 국회의원 선거[1985년 2월 12일]

제12대 국회의원 선거도 11대 때와 마찬가지로 고령군은 달성군과 성주군을 합친 경상북도 제7선거구였다. 후보자 등록 마감 결과 김종기 후보, 이용택 후보, 김창환 후보, 임차문 후보 등 4명의 후보자가 등록을 하였으며 11대와 마찬가지로 김종기 후보와 이용택 후보가 각각 1, 2위로 당선되었다.

13. 제13대 국회의원 선거[1988년 4월 26일]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고령군은 달성군과 합친 하나의 소선거구였다. 동 선거에서 이용택 후보, 배영수 후보, 구자춘 후보가 경합을 벌였으며 선거 결과는 신민주공화당의 구자춘 후보가 35,818표를 얻어 당선되었다.

14. 제14대 국회의원 선거[1992년 3월 24일]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고령군은 제13대 국회위원 선거와 같이 달성군과 합친 선거구였으며, 구자춘, 김창문, 이용택이 각각 공천되었고 김문조는 무소속으로 출마하였다. 선거 결과 구자춘 후보가 제13대 국회의원에 이어 재선되었다.

15. 제15대 국회의원 선거[1996년 4월 11일]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고령군은 성주군을 합친 하나의 선거구로 되었으며, 주진우, 도호기, 김창문, 송인식, 김종기, 박정영, 심광호, 이길용, 이윤기, 최도열이 출마하였다. 선거 결과 13,424표를 득표한 주진우 후보가 당선되었다.

16. 제16대 국회의원 선거[2000년 4월 13일]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고령군은 제15대 선거구와 같이 성주군과 합친 하나의 선거구로 되었으며, 한나라당 주진우, 민주당 김동태, 민국당 최도열, 한국신당 박홍배 4명의 후보가 출마하였다. 선거 결과 9,870표를 득표한 주진우 후보가 제15대 국회의원에 이어 재선되었다.

17. 제17대 국회의원 선거[2004년 4월 15일]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고령군은 성주군, 칠곡군과 합친 하나의 선거구로 되었다. 출마자는 한나라당의 이인기 후보와 우리당의 조창래 후보였으며, 투표 결과 선거인수 27,874명 중 투표자수는 17,080명이었으며 10,381표를 얻은 이인기 후보가 6,171표를 얻은 조창래 후보를 누르고 당선되었다.

18. 제18대 국회의원 선거[2008년 4월 9일]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고령군은 성주군, 칠곡군과 합친 하나의 선거구로 되었다. 출마자는 한나라당의 석호익 후보와 평화통일가정당의 전춘길 후보, 무소속의 이인기 후보였으며, 투표 결과 39,375표를 얻은 이인기 후보가 37,515표를 얻은 석호익 후보를 누르고 당선되었다.

[지방단체장 및 지방자치의회 의원 선거]

1952년 4월 25일에 고령군 8개 면 의회 의원 선거가 실시되었다. 이 선거에서 고령면 13명, 덕곡면 11명, 운수면 14명[보선 3명 포함], 성산면 12명, 다산면 12명, 개진면 11명, 우곡면 11명, 쌍림면 14명[보선 1명 포함]이 초대 고령군 면의회 의원으로 당선되었다. 시·읍·면의회 의원 선거에 이어 5월 10일 실시된 도의원 선거의 경우 경상북도 도의원은 61명이 선출되었고 고령군에서는 초대 도의원으로 유상호가 선출되었다.

1956년 8월 제2차 지방 자치 단체 선거로, 도의회 의원 선거와 면장 선거, 면의원 선거가 있었다. 고령군에서는 고령면 13명[보선 1명 포함], 덕곡면 11명, 운수면 11명, 성산면 11명, 다산면 11명, 개진면 11명, 우곡면 11명, 쌍림면 13명이 제2대 고령군 면의회 의원으로 당선되었다. 또한 8월 13일에 실시된 도의회 선거 결과 고령군에서는 개진면 출신인 홍영희가 당선되었다.

제3차 선거는 1960년 12월에 있었다. 1960년 12월 19일에 실시된 시·읍·면의회 의원 선거에서 고령면 12명, 덕곡면 11명, 운수면 11명, 성산면 11명, 다산면 11명, 개진면 11명, 우곡면 12명, 쌍림면 13명이 제3대 고령군 면의회 의원으로 당선되었다. 도의원 선거는 12월 12일에 실시되었는데 고령군에서는 국회의원 선거구에서 2명씩 선출하게 한 선거법에 따라 2개 선거구로 나누어 실시한 결과, 제1선거구에서는 유상호, 제2선거구에서는 차재하가 각각 당선되었다.

지방 자치제 선거가 부활된 후 1991년 3월 26일 기초 의회 의원 선거를 실시하였고, 광역 의회 의원 선거는 1991년 6월 20일에 실시하였다. 고령군 의원 선거에서는 총선거인 27,515명 중 21,352명이 참가하여 투표율 약 77%를 기록한 가운데 8개의 선거구에서 최상호[고령군], 이승천[덕곡면], 박영화[운수면], 김말수[성산면], 천재식[다산면], 백덕문[개진면], 손병언[우곡면], 백원치[쌍림면] 등 8명의 의원이 선출되었다. 경상북도 의원 고령군 선거에서는 제 1·2 선거구에서 2명의 도의원이 선출되었는데 선거 결과 이태근 후보와 서경규 후보가 도의원으로 당선되었다.

1995년 6월 27일 실시된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는 기초 의원으로 김판호[고령읍], 김양웅[덕곡면], 박영화[운수면], 유병길[성산면], 기세록[다산면], 최재문[개진면], 손병언[우곡면], 오원수[쌍림면] 등 8명을 선출하였으며, 광역 의원으로 민주자유당 서경규, 무소속 서병국이 당선되었다. 자치 단체장인 군수 선거에서는 무소속의 이진환 후보가, 광역 단체장인 도지사에는 민주자유당의 이의근 후보가 당선되었다.

1998년 6월 4일 실시된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는 기초 의원의 경우 김판호[고령읍], 김양웅[덕곡면], 배호철[운수면], 김진태[성산면], 기세록[다산면], 김한수[개진면], 박해동[우곡면], 백영호[쌍림면] 등 8명을 선출하였으며, 광역 의원으로 한나라당 박영화, 한나라당 나종택이 당선되었다. 자치 단체장인 군수 선거에서는 한나라당의 이태근 후보가, 광역단체장인 도지사에는 민주자유당의 이의근 후보가 당선되었다.

2002년 6월 13일 실시된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는 기초 의원의 경우 곽광섭[고령읍], 김양웅[덕곡면], 배호철[운수면], 권영구[성산면], 서상록[다산면], 김한수[개진면], 정규호[우곡면], 임병철[쌍림면] 등 8명을 선출하였으며, 광역 의원으로 무소속의 박영화, 한나라당 나종택이 당선되었다. 자치 단체장인 군수 선거에서는 한나라당의 이태근 후보가, 광역 단체장인 도지사에는 민주자유당의 이의근 후보가 당선되었다.

2006년 5월 31일 실시된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는 기초 의원의 경우 가선거구에서는 곽광섭·김재구·김영옥이, 나선거구에서는 서상록·성목용·한열찬이, 비례대표에서 김순분이 각각 당선되었다. 광역 의원의 경우 박영화 후보가 당선되었다. 자치 단체장인 군수 선거에서는 무소속의 이태근 후보가, 광역 단체장인 도지사에는 한나라당 김관용 후보가 당선되었다.

[참고문헌]
  • 중앙선거관리위원회(http://www.nec.go.kr)
  • 경상북도의회(http://council.gb.go.kr)
  • 고령군 의회(http://council.goryeong.go.kr)
이용자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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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으로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2020.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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