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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보상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901023
한자 負褓商
영어음역 Bubosang
영어의미역 Itinerant Peddler
분야 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경상북도 고령군
시대 조선/조선,근대/개항기
집필자 임경희

[정의]

조선시대 이래 고령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행상인 부상(負商)과 보상(褓商).

[개설]

부보상은 부상과 보상을 함께 일컫는 말이다. 부상은 상품을 지게에 지고 다닌다고 해서, 보상은 보자기에 싸서 지고 다닌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부상은 등짐장수, 보상은 봇짐장수로 불리기도 했다. 걸어 다니며 장사를 했기 때문에 도부꾼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고령 지역에서 이들이 조직적으로 활동을 시작한 것은 부상의 경우 1866년, 보상의 경우 1899년경부터이다.

[창설]

조선시대 부보상단의 창설은 고려 말 이성계(李成桂)가 함경북도 만호(萬戶)의 직에 있을 때 여진과의 전투에서 위기에 처하자 마침 그 곳을 지나던 황해도 토산(兎山) 출신 행상 백달원(白達元)이 구해주었고, 이를 가상히 여긴 이성계가 조선 건국 후 그 대가로 고기와 소금 등 다섯 가지 물품에 대한 전매권을 주고 임방을 설치해 준 것이 그 기원이라고 전한다.

[조직과 운영]

부보상단은 중앙에 팔도도접장을 두고 각 도와 읍에는 임소를 설치한 뒤 임소마다 도접장[道任所]과 접장(邑任所)을 두었다. 지역 임방에는 반수와 접장을 두었다. 지역 임방은 요중(僚中)과 동몽청(童蒙廳), 또는 본방(本房, 또는 大房)과 비방(俾房)으로 구분한다. 각 임방은 반수와 접장 외에 도공원·본방공원·명사장·명사공원·공사장·공사공원·한산공원·서기·집사 등을 두어 각 시장을 돌아다니는 부보상과 시장을 관할했다. 임원의 명칭과 수는 시기마다, 또 지역에 따라 다소 다르다.

[취급상품]

부상이 취급했던 상품은 생선[魚], 소금[鹽], 목기(木器), 토기(土器), 무쇠[水鐵], 미역[藿], 담배[南草], 누룩[曲子], 대나무 제품[竹物], 자리[蘆席], 꿀[淸蜜], 우마차에 실린 짐[牛馬駄], 배에 실린 짐[船載物], 청마(靑麻) 등이었다. 보상은 베[布], 비단[帛], 무늬를 넣은 비단[綾], 종이[紙物], 명주제품[紬物], 모시류[苧屬], 금(金), 은(銀), 동(銅), 삼(蔘), 수달(㺚), 면화(棉花), 피혁(皮革)등을 취급했다. 부상과 보상의 취급 상품은 엄격히 구분되었다.

[변화과정]

부보상은 병인양요 직후 흥선대원군에 의해 전국적 조직으로 정비되었고 한성부의 관할 아래 활동했다. 이후 1881년 부상청이 생기고 1882년 상리소가 개설되면서 일시 분리되었다가 1883년 혜상공국이 설치되면서 다시 합쳐졌다. 이후 상리국[1885년]을 거쳐 상무회의소[1895년]로 개편되었고, 1899년 상무사가 설립된 후에는 다시 이에 속하게 되었다. 상무사의 관할 아래 활동하던 부보상단은 1903년 공제소로 명칭을 바꾸어 활동하다가 1904년 해체되었다. 이후 이들은 상민회, 진명회, 공진회, 상규단 등으로 명칭을 바꾸어 활동했지만 일제의 식민지 경영이 본격화 되면서 결국 시장에서 쫓겨나 더 이상 상인 조직으로 기능할 수 없게 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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