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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 딸과 결혼한 풍등골과 장승백이」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901419
한자 主人-結婚-
영어의미역 Pundong Who Married Landlord's Daughter and Gardian Post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경상북도 고령군 개진면
집필자 김남경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설화|보은담|지명유래담
주요 등장인물 풍동이|주인|이모|장승백이
관련지명 풍동골|장승백이지도보기
모티프 유형 풍동이를 도와준 풍등골과 장승백이

[정의]

경상북도 고령군 개진면에서 풍등골과 장승백이에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주인 딸과 결혼한 풍등골과 장승백이」는 풍동은 본래 주인의 약속대로 딸과 혼인을 하게 했다는 신비스런 장승의 보은담이자 풍등골의 내력을 담고 있는 지명유래담이다. 고령군 개진면 양전2동대가야읍에서 동쪽으로 십 리 지점으로 천하대장군·지하여장군 한 쌍이 고려 중엽부터 조선시대 말까지 서 있었다고 한다.

[채록/수집상황]

2006년 김광순이 집필하고 도서출판 박이정에서 발행한 『한국구비문학』-경북 고령군편에 실려 있다. 이는 2002년 11월 13일 경상북도 고령군 개진면 주민 이춘희[남, 81]에게서 채록한 것이다. 또한 2006년 2월 고령군청이 계명대학교 산학협력단에 위탁한 ‘고령 지역 설화 DB 구축 및 아동용 설화집 제작을 위한 스토리 보드 구축 사업’의 1차년도 연구결과 보고서의 부록인 『고령 지역 설화 자료집』에도 실려 있다.

[내용]

고령군 개진면에는 풍등골 장승백이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한다. 임진왜란 때 부모를 잃은 고아가 전라도 무주 어느 산촌 농가에서 자라게 되었는데, 이 아이는 성품이 온순하고 용모도 준수하며 머리도 좋았다. 이 집 주인은 “네가 우리 집에 10년을 기약하고 노력을 해 주면 우리 딸과 짝지어 줄 테니 그리 하겠는가?”하니, 이 아이는 매우 고마워하며 그리 하겠다고 답하였다.

날이 새면 농사를 열심히 짓고 밤이면 집일을 했으며, 틈이 날 때마다 글공부를 하였다. 주인은 더욱 마음에 들어 큰일을 이 아이에게 맡기니 민첩한 두뇌로 처사를 하여 가정형편이 나날이 넉넉해졌다. 주인집에서 용돈도 주고 잘 해주었다. 아이는 또 아랫마을 한 과부를 이모로 삼아 생긴 돈을 맡기니, 이모도 친조카처럼 아껴 주었다.

세월이 흘러 10년이 가까워지는 동안 아이의 능력으로 주인은 부호가 되었다. 딸에게 중매가 간간이 들어오자 처음에는 양심에 가책이 되어 거절하다가, 나중에는 아이를 불러 조용히 타일러 양보하라고 하였다. 아이에게는 청천벽력과 같은 소리였다. 화가 난 아이는 주인에게 10년 동안의 품삯을 달라고 하였으나 주인은 혹독하게 내쫒았다. 아이는 이모와도 헤어진 뒤, 방랑의 신세가 되어 이곳 고령까지 오게 되었다.

아이는 이름도 알리지 않고 바람잡이로 돌아다닌다고 하여 풍동이란 별명을 듣게 되었다. 대구 포목상에 보부상을 하게 되었다. 새 출발을 한 아이는 장사에 소질을 발휘하여 많은 이득을 얻었다. 하루는 대구에서 포백짐을 지고 장승백이를 지나가다 갑자기 소나기가 내려 옷감과 의복이 다 젖었다. 그러나 금방 햇빛이 나 봇짐을 풀고 젖은 옷감을 두 장승에 이리저리 걸치고 지쳐서 잠이 들었다.

꿈에 장승신이 나타나 “얘야 풍동아 네가 어찌 잠만 길게 자느냐? 매우 고맙다. 우리는 오랜 세월 바람비에 시달리었는데 옷을 걸어주니 그 은혜가 크다. 빨리 일어나서 살던 곳을 가면 되느니라.”하였다. 풍동은 발을 재촉하여 부랴부랴 무주 지방에 도착하여 이모 집을 찾았다. 이모도 마침 선몽을 꾼 터라 다음날 혼인을 앞둔 주인집 처녀와 주인에게 항의하러 가기로 하였다.

다음날 주인집에서는 혼인을 앞두고 잔치 준비에 분주하던 중 풍동이 나타나니 모두 놀라고 못마땅하게 여겼다. 이윽고 신랑이 도착하여 대례청에 나오는데, 신랑의 얼굴이 별안간 하얗게 질리며 발이 땅에 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을 불길한 징조로 여긴 신랑 측에서는 혼인을 하지 않고 돌아가 버렸다.

단장을 한 신부는 그대로 서 있고, 마을 사람들도 풍동과 혼인을 시켜야 된다고 하여 풍동은 주인집 딸과 결혼을 하고 재산도 차지하게 되었다. 풍동은 장승 신에게 매년 칠월 백중일이면 정성껏 축제를 올렸다. 지방 농부들은 논매기의 적기인 매 년 이때에 제사를 드린다. 이로부터 풍동골풍등골로 변하였다.

[모티프 분석]

「주인 딸과 결혼한 풍등골과 장승백이」의 주요 모티프는 ‘약속을 저버린 주인’, ‘꿈에 나타난 장승이 알려준 선몽’, ‘발이 땅에 신랑’, ‘주인집 딸과 혼인한 풍동’ 등이다. 이 이야기는 풍동이를 도와준 풍등골의 유래를 담고 있는 지명유래담이고, 풍동이가 소나기에 젖은 옷감을 장승에 걸쳐서 말렸는데 장승이 이를 고마워하여 풍동에게 혼인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는 보은담이기도 하다. 고령 지역에는 가야산, 미숭산, 만대산 등의 큰 산이 있고 대부분의 마을이 조그마한 봉우리를 지니고 있는데다가 소가천, 대가천, 안림천, 회천 등 하천이 많아 지명과 관련된 설화가 많이 전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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