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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로성 이야기」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901479
한자 吾老城-
영어의미역 Tale of Oroseong Fortress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경상북도 고령군 덕곡면 노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남경란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설화|지략담|전쟁담|지명유래담
주요 등장인물 마을 사람|왜군
관련지명 오로성|오로동
모티프 유형 성을 쌓아 왜적을 물리친 지략|오로성의 명칭 유래

[정의]

경상북도 고령군 덕곡면 노리에서 오로성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오로성 이야기」는 왜적들의 침입을 대비하여 성을 쌓고 임진왜란 때 여러 차례에 걸친 왜군의 침입을 마을 주민이 일심동체가 되어 막아냈다는 지략담이자 당시에 구축한 성이 오로동 뒷산에 있다고 하여 오로성(吾老城)이라고 한다는 지명유래담이다.

[채록/수집상황]

2006년 김광순이 집필하고 도서출판 박이정에서 발행한 『한국구비문학』-경북 고령군편에 실려 있다. 이는 2000년 5월 11일 경상북도 고령군 덕곡면 노리 173번지에 거주하는 주민 이원화[남, 76]에게서 채록한 것이다.

[내용]

고령군 덕곡면 노리 오로동마을에는 임진왜란 때 쌓은 오로성에 관한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 지역은 예로부터 땅이 좋고 물이 맑아 농사가 잘 되고, 사람이 살기에 아주 좋은 지역이었다. 그래서인지 이 지역은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부터 왜적들의 침입이 잦았다. 임진왜란 전부터 왜적들이 쳐들어와 부녀자를 겁탈하고, 쌀과 재물을 노략질하는 등 많은 문제가 있었다.

이렇게 왜적들의 침입과 피해가 잦아지자 이 고을에 사는 젊고 지혜로운 선비들이 모여서 어떻게 하면 왜적들의 침입을 막아낼 수 있을까를 의논한 뒤 성을 쌓기로 하였다. 이튿날부터 동네 사람들을 모아 왜적들의 침입로로 이용되는 뒷산에 성을 쌓기 시작했다. 나이든 어른부터 동네 아이들, 아낙네들 할 것 없이 모두 돌을 이고 흙을 쌓아 몇 달이 걸려 성을 완성했다. 이렇게 사람들의 정성어린 마음으로 쌓은 성은 상당한 규모였고 또한 견고했다.

성을 쌓은 후 얼마 되지 않아 임진왜란이 일어났다. 그 때 수많은 왜군이 쳐들어 왔는데, 이 성에서 마을 사람들이 힘을 모아 함께 싸웠다고 한다. 그들은 그동안 갈고 닦은 실력을 모아 아낙네들은 모두 치마에 돌을 실어 나르고, 동네 아이들도 성에 올라와 어른들의 싸움을 도왔다. 마을 사람 모두 하나가 되어 싸운 결과 수차례에 걸친 왜군의 침입을 여러 번 막아냈다. 마을 사람들이 한마음이 되어 정성으로 쌓은 이 성을 오로동 뒷산에 있다고 하여 ‘오로성’이라고 불렀다. 지금은 산길이 막혀 오로성을 볼 수 없지만 무너진 성의 일부가 덕곡면 오로동의 뒷산에 남아 그 당시 사람들의 피땀 어린 역사를 전하고 있다.

[모티프 분석]

「오로성 이야기」의 주요 모티프는 ‘성을 쌓아 왜적을 물리친 지략’, ‘오로성의 명칭 유래’ 등이다. 고령 지역에는 전쟁과 관련된 지략담이 특히 많다. 임진왜란 때의 의병 곽재우(郭再祐)[1552~1617] 장군의 전쟁 무용담으로 성산면 일대에서 왜군과 대치하여 전멸시키는 큰 전승을 올렸다는 「곽재우 장군과 왜양못」, 전쟁 시에 무기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산꼭대기에 돌을 쌓아 두었던 지략담으로 「무릉동의 돌무더기」, 그리고 임진왜란 때 왜병을 피해 무기로 쓸 돌을 들고 피난한 의병들의 지략인 동시에 조선인의 굴하지 않는 의지의 징표인 「바위고개 경주너들」 등이 그것이다. 「오로성 이야기」 역시 전쟁을 대비하고자 했던 고령군 덕곡면 주민들의 애국심에서 만들어 낸 지략의 실체라고 할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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