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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포나루터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901587
한자 開浦-
영어의미역 Gaepo Ferry Site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터
지역 경상북도 고령군 개진면 개포리
집필자 황상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옛 나루터
주소 경상북도 고령군 개진면 개포리 낙동강지도보기

[정의]

경상북도 고령군 개진면 개포리에 있던 나루터.

[개설]

개포리는 본래 고령군 구곡면에 속하였던 지역으로 마을 앞 낙동강 강변에 개포나루가 있어 개포리라 하였다. 원래는 개산포구마을로 불렸는데, 고려 때 개경포(開經浦)로 바뀌었다. 1914년 행정구역이 통폐합됨에 따라 시례동과 한제동을 병합하여 나루의 이름을 따 ‘경’자를 빼고 개포동이라 하였다. 이후 개포동개진면에 편입되었으며, 1988년 5월 1일 동(洞)이 리(里)로 바뀌어 오늘날 개포리가 되었다.

개포나루는 강물이 서쪽으로 흐르다가 남으로 꺾어 흐르는 곳으로 강 건너는 도동서원과 김종직의 수제자 한훤당 김굉필의 묘소가 있는 대구광역시 달성군 구지면이다.

[건립경위]

낙동강을 낀 개포나루터는 옛날 개산포로 불렸으나, 합천 해인사에 보관 중인 팔만대장경이 포구에서 내려 운반되었다고 하여 근세 이전까지 개경포로 불려졌다. 팔만대장경을 강화도에서 배로 서해와 남해를 거쳐 낙동강을 거슬러 올라와 개경포에 도착, 영남 일대의 승려들이 모여 경판을 머리에 이고 대가야읍을 지나 낫질 신동재를 넘어 해인사까지 운반한 곳으로 당시 곡식과 소금 등이 이곳을 통해 내륙 지방에 운반된 큰 포구였다.

문헌에 나타나는 가장 오래된 기록은 『삼국사기(三國史記)』에 전하는 가혜진(加兮津)이다. 가혜진은 고령군 개진면 개포리에 위치한 개산진(開山津), 즉 개포(開浦)로 비정된다. 이 마을은 일찍이 낙동강을 이용한 수로가 발달한 곳으로 소금이나 곡식을 운반한 개산포구에 선창이 있었다.

[변천]

20여 개에 이르는 낙동강의 나루터 가운데 개진면 개포나루터는 비교적 규모가 크고, 역사적으로 꽤나 깊은 사연을 간직한 곳이다. 지명도 시대에 따라 변화되었는데, 고대에는 가혜진으로 불리다가 개산포로 불리기도 하였는데 해인사에 팔만대장경을 이송한 이유로 개경포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그러다 다시 일제강점기 때 개포로 불렸다. 고증에 의하면 당시 팔만대장경은 강화도에서 부산을 거쳐 개진면 개산포에 내려졌고, 인부들에 의해 열뫼재-대가야읍-낫질 신동재-야로면-해인사로 옮겨졌다고 전한다.

옛날 개경포는 큰 포구였다고 한다. 곡식과 소금을 실어 나르는 배만 해도 하루에 수십 척이나 되었고, 사람 또한 수백 명이 붐볐다. 그래서 창망(倉望)에는 큰 창고가 있었다. 그래서 지금도 창망 밑에 있는 들판을 창야(倉野)라고 부른다. 또 창망에는 가을이 오면 세납으로 받아들이는 곡식이 수만 섬에 이르렀으며, 그 때문에 주변에 화적떼가 많았다.

주로 개포를 중심으로 소금이 많이 운반되었으며, 그렇게 운반된 소금은 고령뿐만 아니라 합천, 성주, 거창, 금릉[현재의 김천] 일대까지 공급되었다. 또 임진왜란 때 왜병들이 자주 이곳에 나타나 일대 주민들을 몹시 괴롭히기도 하였다. 1592년(선조 25) 6월 2일, 왜선 2척이 개경포에 나타나 당시 의병장이던 송암 김면(金沔)이 이끄는 군대와 일대 격전을 벌였다. 당시 김면 장군이 왜병 1,600여 명을 개경포에서 잡아 죽이고 진귀한 궁중 보물을 되찾아 행재소로 보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고려시대 불심으로 호국을 하겠다는 정성으로 강화도에서 새긴 팔만대장경 경판을 황해와 남해의 뱃길로 낙동강 하구를 거쳐 호포까지는 바람으로 돛을 이용하였고 원동-삼량진-임해소-박진-밤마리를 거쳐 개산나루까지는 고디꾼들이 강가에서 돛대에 묶인 밧줄을 당겨 200리 물길을 올라왔다. 그런 후 해인사 소속 승려들이 경판을 하나씩 머리에 이고 80리 길 해인사로 운반하였다.

[현황]

현재 개포나루터는 인근 지역과 결합하여 관광단지로 조성된 상태이다. 경상북도는 과거 개경포와 현재 고령교의 이미지를 조화시켜 이 지역이 가진 낙동강 프로젝트의 상징적 이미지를 부각시키고 명소 탐방, 레저 스포츠 등을 결합한다는 구상이다. 이에 따라 고령군도 개경포의 역사적 의미를 현대적으로 되살려 체험 위주의 관광지로 조성하기 위해 개진면 일원에 개경포 친수 공간 조성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2009년부터 2013년까지 1단계로 국비 150억 원을 들여 나루터, 수변 휴양 시설[흔들다리·뗏목], 낙강칠현 뱃놀이 재현 및 현양 사업[송암 김면 선생 등 7명]이 추진되고, 이와 함께 낙동강을 따라 산재한 고대 및 근대 역사 문화 자원을 정비해 대가야 문화를 복원할 계획이다.

고령군은 다산면 사문진나루터에서 우곡면 봉산리 대암진나루까지 40㎞에 2000억 원을 투입하는 낙동강 역사·문화 탐방 코스 조성 사업을 국책 사업으로 추진되도록 정부에 건의한 상태이다. 이 사업은 낙동강 고령지구 55㎞ 구간에 분포한 나루터, 정자, 명현들의 삶, 선비 정신, 구전 등의 역사 문화유산을 탐방하는 체험 코스가 조성되며, 개발될 탐방 코스는 사문진나루터~다산관광지~노강서원~임진왜란 전적기념관~사망정[낙강7현 충효관]~개경포~김면 장군 대첩지~박석진나루터~대암진나루를 연결할 예정이다.

고령군은 잊혀 가는 역사 자원을 재조명해 교육의 장으로 활용하고 가야 문화의 국제적 이미지를 높이기 위해 팔만대장경 이운 재현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즉 팔만대장경 이운은 개진면 개경포~강화도 선원사 간 경판 이운 행사 재현으로 팔만대장경의 운송 및 내륙 지방 농수산물의 주 이동 통로인 개경포의 옛 명성을 되살리는 계획이다. 개진면 개경포에서 일본 규슈 지역까지 대가야의 뱃길을 재현함으로서 크루즈 관광 활성화 및 국제적 이미지를 높일 수도 있다. 사업비로 국비 50억 원이 들어가는 이 사업은 경판 및 배 제작, 경판 보관 창고 건립, 개경포 광장 3만 3,000㎡를 조성하게 된다.

이 밖에도 사업비 50억 원을 투입해 개진면 인안리~개경포를 잇는 12㎞를 덩굴식물 생태를 조성하는 낙동강 생태 로드 조성 사업도 추진되고 있다. 이러한 사업들의 핵심 지역은 개포나루터이며, 사업이 마무리되면 낙동강 자연 환경과 주변 지역을 연계한 관광 인프라 구축으로 주민 소득 증진과 지역 경제 활성화에 크게 기여할 것이다. 그리고 합천군과 해인사는 고령군의 협조를 얻어 4월 중 개경포에서 팔만대장경이 하역 및 운송되는 과정을 재현하는 ‘팔만대장경 축제’를 개최한다. 당시 상황이 하나의 문화 자료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것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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