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20079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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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郭垠 |
영어음역 | Gwak Eun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충청북도 청주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박홍갑 |
성별 | 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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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 신자승(申自繩)의 딸 평산신씨(平山申氏) |
생년 | 미상 |
몰년 | 1491년 |
본관 | 선산(善山) |
자 | 안부(岸夫) |
호 | 용촌(龍村) |
출신지 | 청주 |
아버지 | 곽기(郭琦) |
어머니 | 진자기(晋自奇)의 딸 진주지씨(晋州池氏) |
[정의]
조선 전기의 문신.
[가계]
본관은 선산(善山)이고, 자는 안부(岸夫)이며, 호는 용촌(龍村)이다. 청주 출신이며, 아버지는 곽기(郭琦), 어머니는 진자기(晋自奇)의 딸 진주지씨(晋州池氏)이다. 할아버지는 곽수원(郭綏元), 증조할아버지는 곽윤성(郭允誠)이다. 부인은 대사성(大司成)을 지낸 신자승(申自繩)의 딸 평산신씨이다.
[활동사항]
1472년(성종 3) 춘장문과(春場文科)에 갑과로 급제하여 검교(檢校)로 등용되었으며, 그해 정조사(正朝使)의 서장관(書狀官)으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1481년에 지평이 된 뒤 헌납·전적·장령을 거쳐 1484년에는 전설사수(典設司守)가 되었다. 그 뒤 왕의 특명으로 담양부사로 나가 부역을 경감하는 등 선정을 베풀었다.
조정에서 그의 치적을 높이 평가하여 승지로 승진시켰으나 부임 도중에 죽었다.
[상훈과 추모]
그가 죽자 부민들은 크게 비통해하였으며 오래도록 기신제(忌辰祭)를 지냈다. 절의에 바르기로 유명한 남효온(南孝溫)도 그 죽음을 슬퍼하는 글을 지어 후세에 남겼고, 율곡(栗谷) 이이(李珥)[1536~1584]도 그의 자손을 현인의 후예라 하여 등용할 것을 주청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