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20108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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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周徵 |
영어음역 | Yi Jujing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충청북도 청주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박홍갑 |
[정의]
조선 후기의 문신.
[가계]
본관은 연안(延安)이며, 자는 위로(渭老)이다. 아버지는 광주부윤을 지낸 이회(李禬)이고, 어머니는 이경인(李敬仁)의 딸 전주(全州)이씨이다. 할아버지는 함경감사 이창정(李昌庭), 증조할아버지는 한림(翰林) 이주(李澍)이며, 부인은 최동주(崔東柱)의 딸 강릉(江陵)최씨이다.
[활동사항]
1673년(현종 14) 생원시에 합격하기 전에 이미 음직(蔭職:과거를 치지지 않고 조상의 혜택으로 얻던 관직)으로 관직에 나가 참하관의 여러 관직을 두루 거쳤다. 생원시에 합격할 당시에는 세자익위사(世子翊衛司)에 딸렸던 정6품의 무관 익찬(翊贊)으로 근무하였고, 1691년(숙종 17)에 실시한 증광시(增廣試)에서 갑과(甲科) 2등으로 급제하였다.
1692년 승지(承旨)로 발탁되었다. 숙종(肅宗)조에 청주목사로 부임한 후에 크게 선정을 펼쳐 청주 백성의 신망을 얻었다. 이를 암행어사가 조정에 보고하여 승자(陞資:당하관에서 당상관이 됨)되었고, 1697년 큰 흉년이 들자 자수미조(自修米租) 1,129석을 내어 적극 진휼하였다. 이에 주민들이 그를 기려 불망비(不忘碑)를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