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2019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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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明求 |
영어음역 | Yi Myeonggu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충청북도 청주시 |
시대 | 근대/근대 |
집필자 | 김양수 |
[정의]
의사이며, 충북지사를 역임한 행정가.
[가계]
호는 가동(可東). 본관은 한산(韓山)으로 고려 말의 학자 인재공 이종학(李種學)의 19대손이다. 인재공은 목은(牧隱) 선생의 둘째 아들이니, 그는 명문의 후예로 청원군 오창면 백현리에서 태어나, 성장하였다.
[활동사항]
15세까지 소학, 사서 등 한문을 수학하고, 그 후 신학문에 접하여 사립 보성중학을 거쳐 경성의학전문학교를 나왔다. 전문학교를 마친 선생은 1916년부터 1921년까지 청주와 태안에서 공의로 봉직하였는데, 특히 3·1운동이 나던 해에는 만세운동에 항거하다가 다친 증평, 미원, 병천 등지의 동포들을 성심으로 돌보았다.
1921년 8월 이후 특히 낙후된 교육환경 개선에 남다른 관심을 쏟아, 의원, 중추원참의, 은성장학회(殷成獎學會) 이사장, 제3대 충북지사, 충북 향교재단 이사장 등을 역임하는 등 충북지방 발전에 공로가 컸다.
석교초등학교 건립, 망선루(望仙樓) 이건(移建), 청주교 가설, 팔결다리 가설 등에 간여하고, 김원근(金元根) 선생의 협찬과 기부금을 마련, 청주여자중학교를 세웠다. 이밖에도 청주에 사범학교 설립을 성사시키고, 이밖에 제3대 충북지사로 괴산 수력발전소 건립에 협조하고, 1951년 청주농과대학 설립을 강력히 추진하였다.
[저서]
『(이명구)자서전』(1970)
[묘소]
충청북도 청원군 북일면 정산리 선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