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3005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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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汶 |
영어음역 | Yi Mun |
이칭/별칭 | 경준(景準),낙성(洛醒)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북도 칠곡군 동명면 봉암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박헌규 |
성격 | 문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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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경상북도 칠곡군 동명면 봉암리 |
성별 | 남 |
생년 | 1800년 |
몰년 | 1873년 |
본관 | 덕산 |
대표관직 | 통정대부 |
[정의]
조선 후기 칠곡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덕산(德山). 자는 경준(景準), 호는 낙성(洛醒). 고려 명종 때 덕풍호장을 지낸 이존술(李存述)을 시조로 하는 덕산이씨의 후손으로 중시조 이유(李愉)의 후손들이 숙종 때 역모(逆謀) 가문이란 누명을 벗고 증 예조참의로 추서되기까지 성(姓)을 숨기고 살았다. 팔공산 자락의 큰 산줄기만 맴돌며 가장 깊숙한 산골짝만 골라 왜관읍 봉계리, 지천면 달서리, 동명면 봉암리에 집성을 이루어 칠곡에 정착하여 세계를 이어오고 있다. 아버지는 이탕휘(李碭輝)이다.
[활동사항]
1800년(정조 24)에 경상북도 칠곡군 동명면 봉암리에서 태어나 사마시에 합격하여 1872년(고종 9)에 현릉참봉(顯陵參奉)을 지냈고, 1873년에 통정대부가 되었다. 덕행으로 알려졌으며, 한국 천주교회사에 큰 맥을 이었다는 내용이 있으나 상세한 내용은 알 수 없다. 후손들의 구전에 의하면, 지천면 심천 덕산이씨 문중에서 천주교 신자로서 활동을 하다가 병인박해 때 문중에서 쫓겨나 지금의 가실성당 구역인 왜관읍 금산 2리 강창으로 이주하여 초창기 가실성당에서 전교 활동을 하였다. 지금도 후손들 가정에서 신부와 수녀들이 많이 배출되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