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30079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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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崔鉉達 |
영어음역 | Choe Hyeondal |
이칭/별칭 | 성내(聖내),일화(一和)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북도 칠곡군 동명면 |
시대 | 근대/근대 |
집필자 | 김일수 |
[정의]
조선 말기 대한제국 당시 칠곡 군수를 지낸 문신.
[개설]
본관은 월성(月城). 자는 성내(聖내), 호는 일화(一和). 최석노(崔錫魯)의 아들로 대구에서 살았으며 1905년 제실회계심사관(帝室會計審査官)과 칠곡군수(漆谷郡守)를 지냈다.
[활동사항]
1894년(고종 31)에 주사(主事)가 되었으며, 1903년 경남시찰사(慶南視察使)가 되어 지방관리의 비리를 색출하였다. 1905년 제실회계심사관(帝室會計審査官)에서 칠곡군수(漆谷郡守), 1908년 경북 대구군 군수를 거쳐 청도군수(淸道郡守)가 되었다. 대한제국의 순종황제가 남순(南巡)할 때 대구에서 황제를 배알하였다. 청도군수로 재직할 때 대한제국이 일제에 강제로 병합되자 국권이 상실됨을 비분강개하다 군수 자리를 사임하고 돌아와서 매천 황현, 향산 이만도와 같은 길을 가겠다고 단식자결(斷食自決)을 도모했다. 주위의 만류로 마음을 고쳐 가족들에게 말하기를 "이제부터 내가 할일은 오직 노모를 받드는 일 뿐이니 그 외의 일은 나에게 알리지 말라”하고 일절 문밖을 나서지 않았다.
[상훈과 추모]
1910년 조선이 식민지로 전락하자 관직에서 사임하고 단식하다가 24일째 목숨을 잃었다. 심산 김창숙이 일대기를 썼으며, 대한민국 초대 부통령 이시영이 묘비명에 백세사(百世師)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