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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독립후원의용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300819
한자 朝鮮獨立後援義勇團
이칭/별칭 의용단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경상북도 칠곡군
시대 근대/근대
집필자 김일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독립운동 단체
설립연도/일시 1920년 9월연표보기
해체연도/일시 1922년 12월연표보기

[정의]

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칠곡 지역 출신의 장탁원 등이 활동한 독립 운동 단체.

[개설]

조선독립후원의용단은 칠곡군 인동면 출신인 장탁원이 활동한 독립운동단체로 3·1운동 이후인 1920년 9월에 경상북도 김천에서 비밀리에 조직되어 1922년에 일제 당국으로부터 탄압을 받을 때까지 활동한 단체이다. 조선독립후원의용단의 주요 인물은 김찬규(金燦奎), 신태식(申泰植), 이응수(李應洙), 장세명(張世明) 등 대부분 경상도 출신이었다.

[설립목적]

조선독립후원의용단의 목적은 독립운동 자금과 독립운동 활동가를 모집하여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를 지원하는 것이었다.

[변천]

김찬규는 조선민족대동단의 단원으로 활동한 인물이었고, 1920년에 중국 길림성에서 안동 출신의 김응섭(金應燮)을 만나 독립운동을 계속하기로 하고 국내로 들어와서 1920년 9월에 경북 김천에서 신태식, 이응수 등과 만나 조선독립후원의용단을 결성하였다. 1920년 12월 무렵 김찬규는 김천에서 이응수에게 김동진(金東鎭)으로부터 전달받은 서로군정서 발행의 군자금 모집 임명장, 서로군정서 군무총장 노백린 발행의 사형선고서, 상해 임시정부 명의의 독립선언에 관한 경고문 등을 넘겨주었다.

이후 대구에서 이태기와 양한위, 예천에서 김병동, 경남 창녕에서 김돈희, 거창에서 정내우 등을 설득하여 단원으로 가입시켜 조직을 강화하였다. 당시의 조직 구성을 보면, 경북 단장에 신태식, 총무국장 이응수, 군무총장 장세명, 군량총장 이명균, 재무총장 김병동, 군무국장 김병포, 재무국장 서상업·손성운, 경주지국장 허달, 경남 단장 김찬규, 총무국장 김홍기, 재무국장 김돈희 등이다.

[활동사항]

조선독립후원의용단은 경상북도 각 지역의 부호들로부터 군자금을 확보하기 위한 활동을 벌였다. 1922년 1월부터 11월 사이에 경북 경산의 안병길(安炳吉), 청송의 조규한(趙奎漢)·황보훈(黃普薰)·조병식(趙炳植), 안동의 이중황(李中晃)·최명길(崔命吉)·권병규(權炳奎), 영일의 이경연(李慶淵)·이원기(李源璣), 영천의 권중황(權重晃), 군위의 홍해근(洪海根), 홍정수(洪貞修), 영덕의 권모 외 1명, 경남 창녕의 신연식(辛延植) 등에게 자금 지원을 촉구하는 서신과 불응할 때 처단한다는 ‘사형선언소’를 발송하는 등의 활동을 벌였다. 1922년 11월 28일에 대구에서 이태기, 김사묵 등 4명이 체포됨으로써 이 단체의 실체가 밝혀졌다. 당시 1922년 12월 18일과 28일에 검거된 인원은 총 42명으로 경상북도 출신자는 30명이며 그 중 칠곡군 인동면 신동 출신의 장탁원도 포함되어 있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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