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3010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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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政黨活動 |
영어의미역 | Political Party Activity |
분야 | 정치·경제·사회/정치·행정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경상북도 칠곡군 |
집필자 | 이동형 |
[정의]
경상북도 칠곡군에서 정치적 견해를 같이하는 사람들이 단체를 구성해 정치권력을 획득하기 위해 벌이는 활동.
[개설]
현대 민주주의 체제에서 정당(政黨)의 역할은 지대하다. 정당은 선거에서 독점적인 역할을 수행하며, 국민의 의사를 국가의 의사로 전환시키며, 정부나 의회와 같은 국가 기관의 인사 및 정책의 결정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이러한 정당은 대체로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요소와 특징을 가지고 있다.
첫째, 정당은 정치적 이해를 같이하는 사람들이 만든 자발적인 조직이다. 정당은 공적인 국가 기관으로서 조직된 것이 아니라 사회에 내재하는 정치적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하여 자발적으로 만들어진 사회 조직이다. 정당의 구성원은 정당이 내세운 이념이나 정책에 관하여 일체성을 공유한다.
둘째, 정당은 상당한 정도의 지속성과 견고성을 지닌다. 정당은 일시적이며 한시적인 집단이 아니라 장기적이고 계속성을 지닌 집단이다. 그리고 정당은 정관(定款), 지도부, 하부 조직 등 일정한 조직을 갖춘 견고한 집단이다. 이 점에서 일반적 이익을 대변하는 정당은 소수의 편파적인 이익을 위해 일시적으로 조직된 집단[파당, 붕당, 도당]과 구별된다.
셋째, 정당은 선거를 통해 정권을 획득하고 유지한다. 정당의 일차적인 목표는 국가의 권력을 장악하고 유지하는 데 있다. 정당이 정부나 의회에서 권력을 장악하기 위한 합법적인 길은 선거이다. 따라서 정당이 대통령이나 의회 선거에서 후보자를 내세우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이런 의미에서 정당의 자유 경쟁과 더불어 자유선거 보장은 민주주의의 필수 조건이다.
넷째, 정당은 정강(政綱) 정책을 내세운다. 정당은 정치적 또는 이념적인 정강 정책을 국민에게 제시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한다. 대개 정강 정책은 가치, 현실 분석, 그리고 국민의 요구가 복합적으로 작용되어 결정된다. 우리 사회에는 상이한 여러 이익이 상호 공존함으로 상이한 정강 정책을 갖는 복수의 정당이 출현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20세기에 들어서기까지 사람들은 정당을 이익 단체처럼 자신의 이익을 대변하는 기구로 생각하여 부정적으로 평가했으나, 점차 양자를 뚜렷이 구분하면서 이를 긍정적으로 보기 시작했다.
정당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이익 단체와 구분되는데, 우선 정당은 일반적인 이익을 대변하는 데 반해, 이익 단체는 특수한 이익을 대변한다. 또한 정당은 직접 정권을 장악하고 이를 행사하는 데 그 목표를 두고 있으나, 이익 단체는 단지 권력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데 만족한다. 뿐만 아니라 정당이 선거에서 후보를 내세우는 것은 당연하나, 이익 단체가 후보를 내세우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마지막으로 정당은 선거를 통해 국민의 심판을 받지만, 이익 단체는 정치에 영향력을 행사는 해도 이에 대한 책임을 지지는 않는다.
광복 이후 한국의 정당은 무수한 변천을 거듭해 왔다. 우리나라의 정당은 이념이나 정강, 정책이 같은 사람들이 이를 추구하고 실현하기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 지도자 한두 사람이 정략적인 필요에 의해 이를 만들고 분당하고 합당하는 등 이합집산을 되풀이하였다. 그렇게 생성된 정당은 당리, 당략에 따라 보수 중심으로 움직일 뿐 일관된 이념이나 정책을 가지지 않았다.
정당의 평균 수명은 대략 5년 안팎에 불과하여 정당의 변천사를 살펴보기 어려울 지경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가운데에도 하나의 일관된 흐름은 있다. 그것은 각 시대마다 대통령을 배출한 집권당으로서의 여당이 있었고, 그와 대립하는 여러 야당이 할거하는 형태를 이루고 있었다. 야당이 제1 야당을 중심으로 뭉쳤을 때에는 상당한 힘을 발휘했으나 야당이 사분오열, 지리멸렬했을 때에는 여당을 효율적으로 견제하지 못하였다.
칠곡 지역에서도 수많은 정당이 명멸하였다. 민주 공화당과 신민당 외에도 대한 독립 촉성 국민회, 대한 국민당, 민주 국민당, 한국 민주당, 자유당, 민주당, 자유 민주당, 국민의 당, 민주 정의당, 국민당, 통일 민주당, 평화 민주당, 국민회의, 한나라당, 열린 우리당 등이 활동했고, 오늘날도 활동하고 있다.
[제1 공화국]
제1 공화국 시기에는 대한 독립 촉성 국민회, 민주 국민당, 자유당, 민주당, 한국 독립당, 진보당, 통일당, 대한 국민당, 조선 민주당, 민주 혁신당, 민주 사회당 등 수많은 정당들이 난립했으나, 대체로 자유당이 집권 여당으로서, 민주당이 제1 야당으로서 정국 운영을 주도했다.
칠곡군의 경우에는 전국 규모의 정당들이 각종 선거에서 후보자를 내면서 경쟁했는데, 우리나라 최초로 실시된 제헌 국회 의원 선거[1948. 5. 10]에서는 4명의 후보자가 대한 독립 촉성 국민회와 민주 국민당, 무소속 등으로 출마해 대한 독립 촉성국민회의 장병만(張炳晩) 후보가 당선되었다.
1950년의 제2대 국회 의원 선거에서는 모두 11명이 입후보했는데, 2명은 대한 독립 촉성 국민회, 1명은 민주 국민당 후보로 나섰으며, 나머지 8명은 무소속이었다. 그 결과 무소속으로 출마한 장택상(張澤相) 후보가 당선되었다. 장택상은 제3, 4, 5대 국회 의원 선거에서도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되었는데, 제3대 국회 의원 선거[1954. 5. 20]에서는 자유당의 우인기 후보와 무소속의 김정식 후보와 경쟁했으며, 제4대 국회 의원 선거[1958. 5. 2]에서는 자유당의 이수목 후보와 경쟁했다.
대통령 선거의 경우, 제2대 대통령 선거[1952. 8. 5]에서 자유당의 이승만(李承晩) 후보는 칠곡군에서 77.7%[2만 8281표]라는 높은 지지를 획득했으나, 제3대 대통령 선거[1956. 5. 15]에서는 29.4%로 득표율이 추락한 반면, 무소속의 조봉암(曺奉巖) 후보는 70.6%의 높은 지지를 받았다.
지방 선거를 보면, 1952년 5월 10일 처음 실시된 초대 도의원 선거에서 칠곡군에서는 대한 청년단 소속의 윤형달 후보와 대한 독립 촉성 국민회 소속의 곽오승 후보가 당선되었으며, 제2대 도의원 선거[1956. 8. 13]에서는 자유당의 신상헌, 서창덕 후보가 선출되었다.
칠곡군에서는 군소 정당들보다는 대한 독립 촉성 국민회, 민주 국민당, 자유당 등 전국 규모의 정당들이 중심이 되어 활동했으나, 선거에서는 이들 정당에서 내세운 후보보다는 무소속으로 출마한 후보에 대한 지지율이 높게 나타났다. 이는 군민들이 정당에 대한 낮은 이해 속에 후보자를 중심으로 지지를 보낸 결과라 할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은 이후에도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제2 공화국]
제2 공화국은 민주당을 중심으로 장면(張勉) 정부가 집권했는데, 이 시기 실시된 선거에서 나타나듯이 칠곡 군민의 정당에 대한 인식이 여전히 낮음을 알 수 있다. 제5대의 민의원 선거[1960. 7. 29]에서는 사회 대중당과 민주당에서 각 1명씩의 후보가, 무소속으로 7명의 후보가 나선 가운데 무소속의 장택상 후보가 당선되었다. 초대 참의원 선거에서는 3명의 민주당 후보와 1명의 한국 사회당 후보, 4명의 무소속 후보가 칠곡군에서 당선되었다. 제3대 도의원 선거[1960. 12. 12]에서는 제1구에서 신민당의 김창묵 후보가, 제2구에서 무소속의 도신호 후보가 각각 당선되었다.
[제3 공화국]
박정희(朴正熙) 정부의 제3 공화국에서는 대통령 중심제에 따른 대통령 선거가 다시 시작되었고, 국회 의원 선거는 소선거구 다수 대표제와 비례 대표제를 채택하면서 지역구와 전국구로 구분해 실시되었다. 뿐만 아니라 후보자는 정당 추천제를 절대 조건으로 하여 무소속의 출마를 금지시킴으로써 정당 정치의 발전을 도모했다. 이 시기 민주 공화당은 여당으로서의 면모를 갖추었으며, 야당은 신민당을 중심으로 민주 공화당의 독주에 맞섰다.
제6대 국회 의원 선거[1963. 11. 26]에서 칠곡군에서는 6명의 후보가 자유당과 자유 민주당, 보수당, 민정당, 추풍회, 민주 공화당의 후보로 나섰으며, 그 결과 민주 공화당의 송한철(宋漢喆) 후보가 자유당의 장택상 후보를 누르고 지역구 의원으로 당선되었다. 전국구 의원을 선출하기 위한 정당에 대한 투표에서 칠곡군의 정당별 득표를 보면, 민주 공화당은 3만 1446표, 자유당은 2만 3647표, 자유 민주당은 1만 4372표를 획득했으며, 민정당, 신민당, 추풍회, 보수당, 신흥당, 정민당, 민주당, 국민의 당, 한국 독립당이 그 뒤를 이었다.
제7대 국회 의원 선거[1967. 6. 8]에서도 칠곡군에서는 자유당과 민중당, 대중당, 신민당, 민주 공화당, 민주당이 각각 후보를 추천해 민주 공화당의 송한철 후보가 재선되었다. 정당 투표에서는 민주 공화당이 가장 많은 3만 9186표를 득표했으며, 자유당과 신민당이 각각 2만 3389표와 2만 35표를 획득했다. 이 밖에도 통한당과 민중당, 정의당, 대중당, 한국 독립당, 자민당, 통일 사회당, 민주당 등이 조금씩 득표했다.
칠곡군의 제8대 국회 의원 선거에서는 민주 공화당의 송한철 후보와 신민당의 김창환(金昌煥) 후보가 맞선 가운데 국민당과 대중당, 통일 사회당의 후보도 경쟁에 동참했으나, 야당인 신민당의 김창환 후보가 당선되었다. 정당 투표에서도 칠곡 군민들은 신민당에 가장 많은 표[2만 4174표]를 주었으며, 민주 공화당[1만 4900표]과 국민당, 민중당, 통일 사회당, 대중당의 순으로 지지를 보냈다.
한편 칠곡군의 대통령 선거를 보면, 제5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5개의 정당에서 대통령 후보가 출마해 경쟁했으며, 그 결과 민주 공화당의 박정희 후보가 2만 4123표를, 민정당의 윤보선(尹潽善) 후보는 1만 3780표를 획득해 1, 2위를 차지했다. 6명의 후보가 출마한 제6대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 공화당의 박정희 후보는 3만 2273표를 득표한 반면, 신민당의 윤보선 후보는 9,411표를 득표해 지난 선거보다 더 많은 표 차이를 보였다. 민주 공화당의 박정희 후보와 신민당의 김대중(金大中) 후보의 대결로 진행된 제7대 대통령 선거에서 칠곡군은 박정희 후보에게 3만 4489표를, 김대중 후보에게 9,702표를 주어 여당 후보에 대한 지지가 높았다.
[제4 공화국]
유신 체제 하의 제4 공화국에서 대통령은 통일 주체 국민 회의에 의한 간접 선거로 선출했으며, 국회 의원은 정수의 2/3를 1선거구에서 2명을 선출하는 중선거구제로 선출했다. 또한 이때부터 무소속 후보의 출마가 허용되었다. 제9대 국회 의원 선거[1973. 2. 27]에서 칠곡군에서는 민주 공화당과 신민당, 민주 통일당에서 각각 1명씩의 후보가 나왔으며, 무소속으로 3명의 후보가 나와 경쟁했다. 그 결과 민주 공화당의 신현확(申鉉碻) 후보와 신민당의 김창환(金昌煥) 후보가 각각 2만 630표와 1만 8472표를 획득하면서 1, 2위를 차지했다.
1978년 11월 24일 실시된 제10대 국회 의원 선거에서 칠곡군이 포함된 경북 제7 선거구에서는 민주 공화당의 신현확 후보와 신민당의 김창환 후보를 비롯해 무소속의 김태식·김현규·유성환·장덕환·조익환 후보가 경쟁해 민주 공화당의 신현확 후보와 무소속의 김현규 후보가 국회 의원으로 당선되었다. 하지만 칠곡군에서는 민주 공화당의 신현확 후보와 신민당의 김창환 후보가 각각 1만 8966표와 1만 2769표를 득표한 반면, 무소속의 김현규 후보는 5,899표를 획득하는 데 그쳤다.
[제5 공화국]
국민들의 민주화에 대한 열망과 군부 독재에 대한 저항이 강했던 제5 공화국에서는 간선과 직선에 의한 각 1차례씩의 대통령 선거가 실시되었으며, 국회 의원 선거는 비례 대표제가 도입되고 중선거구제에 의해 2차례 실시되었다. 그 결과 민주 정의당은 집권 여당이 되었으며, 야당은 민주 한국당과 한국 국민당 등으로 갈림으로써 민주 정의당의 독주에 대항하지 못했다.
제11대 국회 의원 선거[1981. 3. 25]에서 구미와 군위, 칠곡, 선산으로 이루어진 경북 제8 선거구에서는 민주 정의당의 박재홍 후보와 민주 한국당의 김현규 후보, 한국 국민당의 장동식 후보, 신정당의 김태식 후보가 경쟁해 박재홍, 김현규 후보가 당선되었다. 반면 칠곡군에서는 박재홍 후보[1만 9787표]와 장동식 후보[1만 9587표]가 비슷하게 득표했으나, 김현규 후보는 1만 596표를 획득하는 데 그쳤다.
제12대 국회 의원 선거[1985. 2. 12]에서도 박재홍 후보와 김현규 후보가 동반 당선되었다. 이 선거에서 박재홍은 민주 정의당으로, 김현규는 무소속으로 나왔으며, 칠곡군에서는 박재홍 후보가 1만 7034표를, 김현규 후보는 1만 4245표를 득표함으로써 지난 선거에 비해 그 차이가 좁혀졌다.
1987년 12월 16일 실시된 제13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민주 정의당의 노태우(盧泰愚), 통일 민주당의 김영삼(金泳三), 평화 민주당의 김대중, 신민주 공화당의 김종필(金鍾泌), 한주의 통일 한국당의 신정일(申正一) 후보가 입후보했으며, 민주 정의당 노태우 후보가 36.6%를 얻어 당선되었다. 칠곡군은 민주 정의당 노태우 후보에게 77.5%[3만 6388표]라는 전국 득표율 두 배 이상의 절대적인 지지를 보냈다.
[제6 공화국]
여소야대(與小野大)의 정국에서 출범한 제6 공화국은 1990년 2월 8일 민주 정의당과 신한 민주당, 신민주 공화당이 합당하여 거대 여당인 신한국당을 창당함으로써 평화 민주당과 양당 체제를 구축했다. 소선거구제를 채택해 실시된 제13대 국회 의원 선거[1988. 4. 26]에서 칠곡군은 성주군과 하나의 선거구가 되었으며, 민주 정의당의 장영철 후보가 통일 민주당의 김창환 후보를 누르고 당선되었다. 성주군에서는 김창환 후보[2만 787표]가 장영철 후보[1만 4267표] 보다 더 많은 득표를 했으나, 칠곡군에서는 장영철 후보[3만 272표]가 김창환 후보[1만 3081표] 보다 두 배 이상을 득표했다.
삼당 합당 후 실시된 제14대 국회 의원 선거[1992. 3. 24]에서 칠곡·성주 선거구에서는 민주 자유당의 장영철 후보가 72.0%를 획득해 민주당의 도호기 후보를 누르고 당선되었다. 칠곡군에서도 장영철 후보는 75.3%의 지지를 획득했다.
제14대 대통령 선거[1992. 12. 18]에서는 민주 자유당과 평화 민주당, 통일 국민당, 신정당, 대한 정의당에서 각각 입후보했으며, 무소속으로도 2명의 후보가 출마했다. 그 결과 민주 자유당의 김영삼 후보가 42.0%를 득표해 당선되었는데, 칠곡군에서는 63.8%라는 전국 평균 이상의 높은 지지를 획득했다. 1991년 지방 자치의 시작으로 처음 실시된 1991년 6월 20일의 제1대 광역 의원 선거에서 칠곡군에서는 민주 자유당이 제1, 2, 3 선거구에서 각각 후보를 내어 모두 당선되었으며, 민주당은 제3 선거구에 1명의 후보를 내었다.
[문민정부]
문민정부(文民政府) 시기의 여당은 1995년 12월 집권한 민주 자유당이 당명을 변경해 탄생한 신한국당이었다. 1996년 실시된 15대 총선거에서 과반수에 못 미치는 139석을 차지해 제1당이 되었으나, 이후 자유 민주 연합[약칭 자민련]과 민주당 의원들을 영입하여 과반수를 확보하였다. 1997년 11월, 제15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민주당과 합당, 한나라당으로 이름을 변경하였다.
칠곡군의 제15대 국회 의원 선거[1996. 4. 11]에서는 신한국당과 새정치 국민회의, 민주당, 자유 민주 연합에서 각각 후보를 배출했으며, 무소속으로도 3명이 입후보했다. 그 결과 신한국당의 장영철 후보가 군위·칠곡군 선거구에서 1만 9393표[31.1%]로 당선되었는데, 칠곡군에서는 1만 4290표[33.0%]를 득표함으로써 더 높은 지지를 받았다. 새정치 국민회의의 김대중 후보가 한나라당의 이회창(李會昌) 후보를 누르고 제15대 대통령으로 당선된 1997년의 대통령 선거에서 칠곡군은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에게 62.5%를 투표한 반면, 김대중 후보에게는 14.9%만의 지지를 보냈다.
1995년 6월 27일 제1회 전국 동시 지방 선거에서는 광역 자치 단체장과 기초 자치 단체장, 광역 의원이 정당 추천으로 실시되었다. 우선 칠곡군이 속한 경상북도의 광역 자치 단체장 선거에서 민주 자유당은 이의근 후보를, 자유 민주 연합에서는 박준홍 후보를 추천했으며, 무소속으로 이판석 후보가 입후보해 이의근 민주 자유당[약칭 민자당] 후보가 당선되었다. 하지만 칠곡군에서는 자유 민주 연합의 박준홍 후보가 가장 많은 1만 5996표를 득표한 반면, 민주 자유당의 이의근 후보는 3명의 후보 중 가장 적은 1만 3643표를 획득했다.
기초 자치 단체장 선거에서는 민주당과 자유 민주 연합에서 각각 입후보했으며, 무소속으로도 5명이 등록했다. 그 결과 무소속의 최재영 후보가 26.3%를 득표해 당선되었다. 광역 의원 선거의 경우에는 칠곡 제1, 2, 3 선거구에서 민주 자유당 후보가 각각 출마했으며, 4명의 무소속 후보가 출마했다. 선거 결과, 제1, 2 선거구에서는 민주 자유당 후보[송필각, 조영일]가 각각 당선되었으나, 제3 선거구에서는 무소속의 박중보 후보가 민주 자유당의 신윤식 후보를 누르고 당선되었다.
[국민의 정부]
제15대 대통령 선거에서 김대중 후보를 대통령으로 당선시킴으로써 여당이 된 새정치 국민회의는 헌정 사상 처음으로 수평적이고 평화적인 정권 교체를 이룩했지만, 지역 정당이라는 태생적 한계를 극복하지는 못했다. 결국 새정치 국민회의는 2000년 1월 20일 원내 과반수 의석 확보와 일부 신진 세력을 끌어들인다는 명분으로 새천년 민주당으로 확대 개편하였다. 그러나 2000년 4월 13일 제16대 총선 결과 의원 정수 273석 가운데 115석[지역구 96석, 전국구 19석]을 차지해 원내 과반수 확보에 실패하고 야당인 한나라당에 이어 국회 제2당에 머물렀다.
칠곡군의 제16대 국회 의원 선거에서는 한나라당과 민국당에서 각각 후보를 추천해 한나라당의 이인기(李仁基) 후보가 53.4%를 득표해 당선되었다. 2002년 12월 19일 실시된 제16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한나라당과 새천년 민주당, 하나로 연합, 민주 노동당, 사회당, 호국당 등에서 후보가 출마했으나,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와 새천년 민주당의 노무현(盧武鉉) 후보 간 대결로 진행되었으며, 노무현 후보가 제16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칠곡군에서는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가 71.2%를 득표했으나, 새천년 민주당의 노무현 후보는 23.5%를 얻는 데 그쳤다. 15대 대통령 선거와 비교하면 한나라당 후보에 대한 지지도 약간 올랐지만, 새천년 민주당에 대한 지지는 10여%의 상승폭을 보였다.
제2회 전국 동시 지방 선거[1998. 6. 4]의 경상북도지사 선거에서는 한나라당과 자유 민주 연합 후보 간의 대결로 진행되었으며, 한나라당 이의근 후보가 당선되었다. 칠곡군에서는 지난 선거와는 달리 한나라당 이의근 후보에게 71.6%의 지지를 보냈다. 기초 자치 단체장 선거에서는 한나라당 최재영 후보가 단독 출마해 당선되었다. 광역 의원 선거에서는 지난 선거와 마찬가지로 한나라당의 이상수 후보와 무소속의 박중보 후보가 당선되었다.
[참여 정부]
2002년 12월 제16대 대통령 선거에서 여당인 새천년 민주당 노무현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어 정권 재창출에 성공했으나, 선거 후 새천년 민주당의 내부 갈등으로 2003년 11월 친노무현 세력을 중심으로 한 열린 우리당이 창당되어 집권 여당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했다. 이후 열린 우리당은 많은 이합집산 과정을 거치면서 2007년 8월 5일 대통합 민주 신당을 창당해 제17대 대통령 후보를 배출했다.
열린 우리당 창당 후 처음 실시된 제17대 국회 의원 선거에서 고령·성주·칠곡군 선거구에서는 한나라당과 열린 우리당에서 각각 후보를 추천했으며, 한나라당의 이인기 후보가 60.1%를 득표해 당선되었다. 칠곡군에서 한나라당 이인기 후보는 64.1%의 득표율을 보였다.
제17대 대통령 선거[2007. 12. 19]에서는 대통합 민주 신당과 한나라당, 민주 노동당, 민주당, 창조 한국당, 참주인 연합, 경제 공화당, 새시대 사람 연합, 한국 사회당 등 9개의 정당에서 각각 후보를 내었으며, 무소속으로 이회창 후보가 등록해 한나라당의 이명박(李明博) 후보가 48.7%를 얻어 당선되었다. 칠곡군에서는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가 67.3%라는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으며, 무소속의 이회창 후보는 17.3%, 대통합 민주 신당의 정동영(鄭東泳) 후보는 7.9%를 득표하는 데 그쳤다.
한편 참여 정부의 첫 선거인 제4회 전국 동시 지방 선거[2006. 5. 31]에서 경상북도지사 선거는 한나라당 김관용(金寬容) 후보가 열린 우리당 박명재 후보와 경쟁해 76.8%를 득표함으로써 당선되었는데, 칠곡군에서는 74.9%를 획득했다. 기초 자치 단체장 선거의 경우, 칠곡군에서는 무소속의 박창기, 장세호 후보와 경쟁한 한나라당 배상도 후보가 46.9%를 득표해 당선되었다.
광역 의원 선거에서는 칠곡군 제1·2 선거구에서 한나라당과 무소속으로 모두 7명의 후보가 등록해 한나라당의 송필각, 박순범 후보가 각각 당선되었다. 기초 의원 선거에서는 모두 4개의 선거구에서 한나라당과 열린 우리당 소속으로 10명의 후보가, 무소속으로 14명의 후보가 입후보해 경쟁했으며, 그 결과 8명의 한나라당 후보와 1명의 무소속이 당선되었다.
[이명박 정부]
한나라당은 2007년 제17대 대통령 선거에서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가 당선됨으로써 정권을 되찾았으나, 2012년 정권 재창출을 위해 새누리당으로 당명을 변경하였다. 2012년 12월 19일 실시된 제18대 대통령 선거에는 새누리당과 민주 통합당, 통합 진보당에서 각각 대통령 후보를 배출하였으나, 통합 진보당의 이정희 후보가 중도 사퇴함으로써 4명의 무소속 후보와 함께 6명의 대결로 진행되었다. 그 결과 새누리당 박근혜(朴槿惠) 후보가 1577만 3128표[51.55%]를 획득해 1469만 2632표[48.02%]를 얻은 민주 통합당 문재인(文在寅) 후보를 누르고 제18대 대통령으로 당선됨으로써 정권 재창출에 성공하였다. 이 선거에서 칠곡군은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에게 절대적인 지지[80.6%]를 보냈다.
이명박 정부에서 실시된 두 차례의 국회 의원 선거를 보면, 2008년 4월 9일의 제18대 국회 의원 선거에서는 한나라당이 131석을 차지함으로써 제1당이 되었으며, 통합 민주당은 66석을 차지하는 데 그쳤다. 고령·성주·칠곡군 선거구에서는 한나라당과 평화 통일 가정당, 무소속으로 3명의 후보가 나왔으나, 한나라당의 석호익 후보와 무소속의 이인기 후보 간 경쟁으로 진행되었다. 그 결과 무소속의 이인기 후보가 49.4%를 득표함으로써 47.0%를 득표한 석호익 후보를 근소한 차이로 누르고 당선되었다. 칠곡군에서는 무소속 이인기 후보가 53.1%를, 한나라당 석호익 후보는 44.1%를 각각 득표했다. 한편 칠곡군의 정당 투표에서는 한나라당이 50.6%를 차지했고, 친박 연대가 27.5%로 선전했으며, 통합 민주당은 5.1%를 획득하는 데 그쳤다.
제19대 국회 의원 선거[2012년 4월 11일]에서는 새누리당이 152명의 당선자[지역구 127명, 비례 대표 25명]를 배출했으며, 민주 통합당은 127명[지역구 106명, 비례 대표 21명]을 당선시켰다. 고령군·성주군·칠곡군 선거구에서 새누리당과 민주 통합당, 기독당에서 후보를 배출했으며, 무소속으로도 2명의 후보가 출마했다. 5명의 후보가 경쟁한 결과 새누리당의 이완영 후보가 4만 2569표[50.49%]를 득표해 당선되었다. 한편 칠곡군은 이완영 후보에게는 48.55%[2만 1537표]의 지지를, 정당 투표에서 새누리당에게는 68.54%[2만 9938표]의 지지를 보냈다. 반면 민주 통합당은 15.79%, 통합 진보당은 5.16%의 지지를 획득하면서 제18대 국회 의원 선거에 비해 선전하였다.
한편 제5회 전국 동시 지방 선거[2010. 6. 2]에서 제5대 광역 자치 단체장 선거에서는 한나라당과 민주당, 민주 노동당, 국민 참여당에서 각각 후보를 내었다. 선거결과 김관용 한나라당 후보가 91만 3812표[75.36%]를 득표해 2위를 차지한 민주당 홍의락 후보[14만 3347표, 11.8%]에 비해 압도적인 표 차이로 제5대 경상북도지사로 재선에 성공하였으며, 칠곡군에서는 71%[3만 2763표]의 지지를 획득했다.
기초 자치 단체장 선거의 경우, 칠곡군에서는 무소속 장세호 후보가 1만 6723표[35.6%]를 득표해 1만 3891표[29.6%]를 득표한 무소속 배상도 후보와 1만 2736표[27.1%]를 득표한 한나라당 김경포 후보를 제치고 당선되었다.
광역 의원 선거에서는 칠곡군 제1·2 선거구에서 한나라당과 무소속으로 모두 3명의 후보가 등록해 한나라당의 송필각 후보는 제1 선거구에서 무투표 당선되었으며, 제2 선거구에서는 무소속의 김희원 후보[54.61%]가 한나라당의 박순범 후보[45.38%]를 누르고 당선되었다. 기초 의원 선거에서는 모두 4개의 선거구에서 한나라당과 미래 연합 소속으로 9명의 후보가, 무소속으로 13명의 후보가 입후보해 경쟁했으며, 그 결과 4명의 한나라당 후보와 5명의 무소속 후보가 당선되었다.
[박근혜 정부]
새누리당은 2012년 당명을 바꾸고 제18대 대통령 선거에서 박근혜 후보를 대통령으로 당선시킴으로써 정권 재창출에 성공하였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한 차례의 전국 동시 지방 선거[제6회]가 치러졌으며, 2016년과 2017년 제20대 국회 의원 선거와 제19대 대통령 선거가 실시될 예정이다.
제6회 전국 동시 지방 선거는 2014년 6월 4일 실시되었는데, 우선 광역 자치 단체장 선거에서는 새누리당을 비롯해 새정치 민주 연합, 통합 진보당, 정의당 등 4개의 정당에서 후보를 배출하여 새누리당 김관용 후보가 압도적인 표 차이로 당선되었다. 칠곡군에서는 새누리당 김관용 후보에게 76.06%[3만 6261표]의 지지를 보냈다.
칠곡군 기초 자치 단체장 선거에서는 새누리당 후보와 무소속 후보가 출마했으며 새누리당 백선기 후보가 64.25%[3만 828표]를 득표하여 무소속 조민정 후보[1만 7152표, 35.74%]를 누르고 당선되었다. 광역 의원 선거의 경우 칠곡군 제1, 2 선거구에서는 새누리당 후보가 모두 당선되었다. 제1 선거구에서는 새누리당 곽경호 후보[65.26%]가, 제2 선거구에서는 새누리당 김창규 후보[59.34%]가 당선되었다. 기초 의원 선거에서는 4개의 선거구에서 새누리당 소속으로 9명의 후보가, 무소속으로 8명의 후보가 경쟁했으며, 그 결과 6명의 새누리당 후보와 3명의 무소속 후보가 당선되었다.
[평가]
칠곡군의 정당 활동을 선거를 통해 살펴본 결과, 칠곡군에서는 보수 정당을 중심으로 정당 활동이 이루어짐으로써 보수 정당의 강세가 계속되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3 공화국 이후 선거에서 무소속 후보가 보수 정당 또는 집권 여당 후보를 물리치고 당선되는 경우가 자주 나타나고 있음을 볼 때 후보자 개인의 성향이나 출신 지역도 정당의 성향 못지않게 중요하게 고려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