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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화암 유래」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301797
한자 落花巖由來
영어의미역 Origin of Nakhwaam Rock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경상북도 칠곡군 지천면 신리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조은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바위 명칭유래담
주요 등장인물 이석담|왜병|여자 종|노인|부녀자들
관련지명 발암산 지도보기
모티프 유형 왜병으로 인해 바위 절벽으로 떨어져 죽은 부녀자들 때문에 낙화암으로 불려지게 됨.

[정의]

경상북도 칠곡군 지천면 신리 발암산에 있는 바위 절벽이 낙화암으로 불리게 된 이야기.

[채록/수집상황]

칠곡군지편찬위원회가 채록하여 1994년에 발행한 『칠곡군지』에 수록되어 있다.

[내용]

낙화암과 관련된 이야기는 대부분이 적에게 대항하기 힘든 여성들이 목숨을 끊은 것과 관련이 되어 있다. 경상북도 칠곡군 지천면 신리 발암산에는 낙화암이라는 바위 절벽이 있다. 속칭 ‘바리덤’이라고도 하는 이곳의 유래는 다음과 같다.

임진왜란 전에 강씨라는 집안이 살았었다. 부자였고 높은 벼슬을 해 오인석 강씨라고 불렀다. 이들 오형제가 모두 과거에 급제해 인양(引揚)을 탔으며 집안에 바위가 다섯이나 있어서 그렇게 부른 것이다. 그 때 광주이씨 조상 중에 석담이라는 분이 계셨는데 당시 24세의 나이로 진사를 지냈다. 마침 대구 방면으로 여행을 나섰다가 오는 길에 왜병이 쳐들어오는 것을 보고는 동네로 들어오니 강씨네 집 여자 종이 빨래를 하고 있었다. 종에게 빨리 집으로 가서 왜병이 쳐들어온다고 고하라고 했다. 여자 종이 빨래하던 것을 멈추고 집에 가서 이를 알리자, 노인들이 바둑을 두고 있다가 그 말을 듣고는 “이진사 같은 분도 그런 허황된 소리를 하는가?” 하면서 바둑을 계속 두려고 했다. 그러자 그 중 한 노인이 “이진사가 그런 허황된 소리를 할 사람이 아니다”고 하여 젊은이를 하나 불러 동구 밖으로 나가 직접 확인하게 하니 과연 왜병이 떼를 지어 쳐들어오고 있었다.

갑자기 그런 변을 당하게 되자 어찌할 바를 모르고 우물쭈물하다가 결국 모두 바리덤이 있는 발암산으로 올라갔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 그곳으로 피난을 했으므로 얼마 후 왜병이 동네로 들어왔을 때는 이미 마을이 텅 빈 후였다. 발암산으로 올라간 동네 사람들이 왜병을 향해 돌을 굴리고 함성을 지르자 왜병들은 발암산으로 향해 올라가려고 했다. 그러나 산 아래 깊은 강과 돌이 굴러 산을 오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자세히 지세(地勢)를 살피니 신동 옆으로 비스듬한 경사가 있어 그 곳으로 왜병들이 올라갔다. 왜병에게 포위된 마을 사람들은 모두 마음을 모아 왜병의 손에 죽음을 당하느니 차라리 목숨을 버리자며 모두 절벽 아래로 떨어져 죽었다고 한다. 그 때 대부분의 죽은 자가 부녀자들이었으므로 이 바위 절벽을 낙화암이라고 했다. 이로 인해 강씨 집안이 전멸하고, 석담 선생은 팔공산으로 피난을 가서 공부를 많이 해 학문과 벼슬을 겸비했다. 후에 낙화암 사건을 추모하여 낙화암 아래 서양서원을 세워 후진을 양성했다고 한다.

[모티프 분석]

낙화암과 관련된 이야기 중에서 백제 의자왕의 삼천 궁녀가 떨어져 죽은 이야기가 가장 유명하다. 이 마을의 이야기도 의자왕의 삼천 궁녀처럼 왜적으로부터 정절을 지키기 위해 부녀자들만 이 바위 절벽으로 떨어져 죽었기 때문에 낙화암이라고 명명한 것으로 보인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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