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30179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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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劉忠臣說話 |
영어의미역 | Folk Tale of Yu Fidelity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경상북도 칠곡군 북삼읍 숭오리 |
시대 | 근대/근대 |
집필자 | 조은희 |
[정의]
경상북도 칠곡군 북삼읍 숭오리에 전해오는 유충신에 관련된 이야기.
[개설]
이야기는 옛날이야기의 성격보다는 실제 있었던 일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일제강점기에 일본 경찰의 고문에도 굴하지 않고 뜻을 지킨 유충신에 관한 실제 이야기이다.
[채록/수집상황]
안동대학교 민속학연구소가 채록하여 1994년에 발행된 『금오산문화재지표조사 보고서』에 수록되어 있다.
[내용]
칠곡군 북삼읍 숭오 3리에 가면 강릉유씨(江陵劉氏)들이 많이 살고 있다. 일제강점기에 이름은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마을 어른들이 유충신이라고 부르는 분에 대한 이야기가 지금도 전해지고 있다. 유충신은 석유도 쓰지 않고, 고무신도 신지 않고, 머리도 단발(短髮)로 하지 않고 우리의 것을 고수하면서 일본에게 반대하셨던 분이었다. 일본 경찰들의 눈에는 유충신이 눈에 가시처럼 보였다. 그래서 무엇인가 꼬투리만 있으면 잡혀가서 고초를 겪게 하였다. 경찰서에 잡혀가 겪은 고초는 입에 담기 무서울 정도로 혹독하였다고 한다. 악랄한 일본 경찰들은 유충신 같은 사람이 많으면 조선을 일본 마음대로 할 수 없으므로, 유충신이 자손을 보지 못하게 하기 위해 낭심에다 심지를 놓고 불을 붙였다고 한다. 유충신은 이런 고초에도 굴하지 않고 일본에 맞섰다. 광복이 되고 나라에서 선생을 기리기 위해 비를 세웠다.
[모티프 분석]
이야기의 모티프는 일본 경찰의 잔인한 고문에도 뜻을 굽히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 유충신에 관한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