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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순호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301021
한자 閔舜鎬
영어음역 Min Sunho
이칭/별칭 봉래(鳳來),우초(愚樵)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충청북도 제천시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구완회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80년연표보기
활동 시기/일시 1907년연표보기
몰년 시기/일시 1965년연표보기
추모 시기/일시 1990년연표보기
성격 의병
성별
대표 경력 이강년 의진 소모 후군장

[정의]

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가계]

본관은 여흥(驪興). 자는 봉래(鳳來), 호는 우초(愚樵).

[활동 사항]

민순호(閔舜鎬)[1880~1965]는 경상북도 문경군 출신이다. 1895년(고종 32) 단발령이 있은 후 각지에서 의병이 일어날 때, 이강년(李康秊)을 따라 문경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이때 민순호는 전 재산을 기울여 군자금을 마련하며 의병을 규합하였다. 문경에서 패전한 후에는 이강년을 따라 제천·충주 지역에서 기세를 떨치던 유인석(柳麟錫)의 휘하에 들어갔다. 이강년이 제천 의진의 유격장이 되자 종사관으로 활동하였으며, 서상렬(徐相烈) 진영과 합세하여 경상도 지역으로 내려가 활동하며 조령에서 접전을 펼치기도 하였다.

1896년(고종 33) 5월 제천 의진이 무너진 후 이강년과 함께 한동안 은거하였으나, 1907년(순종 1) 여름 다시 봉기할 때 소모 후군장에 임명되어 제천·원주·연풍·충주·안동·문경 등지를 누비면서 일본군과 부딪쳤다. 1908년(순종 2) 7월 의병장 이강년이 청풍의 금수산 전투에서 체포되자 중군장 김상태(金尙台)와 흩어진 의병들을 모아 태백산 일대에서 약 3년간 지속적인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다. 이에 일제는 민순호의 가옥과 가재를 불태우고 가족들을 핍박하는 보복 조치를 취하기도 하였다. 해방 후 문경에서 추진된 『운강선생창의일록(雲崗先生倡義日錄)』 간행 사업에 적극 참여하였다.

[상훈과 추모]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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